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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안이 만난 사람 3]길 잃은 사람들

09/17/2021 | 12:00:00AM
[제프안이 만난 사람 3]길 잃은 사람들
사진설명=앤디 테일러 씨 Andy Taylor at Rt 234 and Beauregard St. Intersection, Alexandria, Virginia. 혹독한 더위에 지친 표정이 완연 해서 물 한 병을 건네니 고맙다는 인사말 대신 뒤차로 황급히 걸어갔다.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만난 교수님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Ruff 철학 교수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분 강의 중 노숙자 문제가 나왔다. 나는 노숙자들을 ‘homeless’라 부르는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미국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homeless’ 보다 ‘houseless’ 라는 표현이 타당하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한 기억이 있다.

‘home’이란 건물을 지칭하기 보다 가족을 의미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도 house, 콘도 또는 아파트와 같은 거주할 장소가 있다면 노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말에 ‘home is where they have to take you back(집이란 받아주는 곳)’ 이란 말도 있다. 따라서 ‘homeless’가 된 연유에는 집도 절도 없는 그래서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상태를 말한다. 그러고보니 그 수많은 노숙자들 중에서 한인들은 안보인다. 그래도 유교 사상과 기독교 사랑 때문인지 또는 유별난 한인들의 가족사랑 덕인지는 몰라도 한인 노숙자 모습은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초근대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미국사회 그리고 세계정치 1번지 워싱턴에서 보이는 수많은 걸인들. 자신의 갈 길을 잃고 서성이는 수많은 궁상들을 매일 지나치며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나. 그리고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Andy Ta ylor “loca l guy”

내가 만난 앤디 테일러씨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중천에 있는 시각, 숨가쁜 더위를 겨우 버티며 가는 두 다리가 구부러진 등판을 지탱하며 대로 중앙에 서 있었다.

신호등이 빨간불이라서 쓰러질 듯 움직이는 그에게 창문을 내려 운전석 옆에 있던 물 한 병을 건네니 급히 들이킨다. 고맙다는 답변 대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무엇인가 바라는 눈빛이다. ‘아뿔싸’ 속으로 외치며 1불 지폐를 건네니 역시 고맙다는 대답 없이 고개 젖혀 물 한 모금 들이킨다. “What’s your name?”, “Andy Taylor”, “어디 출신이니?”, “여기(local)” “어찌된 일이니?(What happened to you)”, “페인팅 회사 사장이었지 하지만 다 날렸어(I used to owned a painting company but lost all)”, “미안하네(Sorry to hear that)” 그는 축 늘어진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아내도 떠나고...(My wife left me...)”, “그녀는 어디에 있니?(Where is she?)”, 그는 주저없이 답했다. “캘리포니아” 내가 한인 이라서인지 우선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다. “하루 얼마나 버니?(How much are you making a day?)”, 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20 to $30” 하며 말하는데 그의 입에서 침이 너무 뛰어나와 내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야 했다.

앤디는 나에게서 더 얻을 것이 없어 보였는지 뒤편 차로 발길을 옮기는데, 그 한 박자 늦은 듯한 걸음걸이가 파리에서 보았던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닮았다. 물론 앤디의 뒷모습이 생 피에르를 다소 닮았다 하더라도 칼레의 시민들과 같은 고귀한 시민정신과 그들이 실천해 보여주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근접 못함은 겉에 보이는 모습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허망한 생각도 잠시 신호등은 그린색으로 바뀌고 뒤에 있는 차가 빵빵거리며 재촉한다. 홈리스와 잡담할 한가한 시간이 없다는 듯이...

#앞면에 쓰여진 Homeless 그리고 반대편에 쓰여진 Heading to Golden Gat ate

앤디가 들고 있는 구걸 사인은 일반 걸인들이 들고 있는 허접한 종이 사인들과 사뭇 달랐다. 우선 그가 제작한 직사각형의 아크릴 사인에는 선명하게 ‘Homeless’라 적혀있고 반대편 역시 ‘금문교로 갑니다(Heading to Golden Gate)’라 적혀 있는데 fonts도 Calibri로 선명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사인 하나가 참으로 인생 여정에서의 수많은 모순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노숙자임을 선언하면서도 어느 다른 수식어나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더욱이나 떠나간 아내가 있는 금문교 근방으로 간단다. 금문교는 금광을 찾아 나섰던 49너들과 금의환향을 뜻하는 캘리포니아 상징물 아닌가? 더욱이나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가장 집값 비싼 곳이다. 앤디의 꿈은 야무진 듯 싶다. 사인 하나가 그의 주장대로 페인팅 회사 사장이었다는 것을 다소 증언이나 하는듯 보였고 그가 마지막까지 포기 불가한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에게나 가능한 무너짐

그래서 그는 그 흔한 ‘Thank you’ 한마디 하기가 어려웠던가? 주고 싶으면 주고 아니면 꺼져버려라 하는 듯한 다소 무례한 그의 태도에서 나는 무너진 사람들의 반감을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 고작 $1을 건네는 너도 별거 아니라는 반감. 나도 너의 그 자리에 아니 더 좋은 자리에 있어 보았다는 반감. 그런 점 등을 내가 고려해서였는지 아니면 환갑도 지나 보이는 덥수룩한 흰수염과 얼굴의 수많은 주름살이 그의 지난 세월의 고난을 대변해주어서 였는지 그의 무례한 태도에도 나는 오히려 앤디에게서 잠시나마 센티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어느 누구나 어느 남자나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명품 패션센터 앞의 노숙자 Ron

알링턴에 위치한 펜타곤 입구에 자리를 제대로 잡고 앉아있는 Ron을 만났다. 나이도 젊은 그는 왜 걸인이 되었을까?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종이 사인은 아주 간략했다. “감사합니다(Thanks a lot)”가 전부다. 사인으로 보아서는 돈을 주니 고맙다는 뜻이니 걸인이 분명하다. 그러나 Homeless라는 문구는 없으니 노숙자가 아닐수도 있다. 프로페셔널 걸인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위에서 아무 자본과 투자 없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현찰에 세금도 없다. 차들이 정차되어 있으면 의자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파란색으로 바뀌면 주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전화기를 열심히 본다. 의자에 앉아 셀폰 보며 여유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전혀 허기진 자의 태도가 아니다. 그의 의자에 앉은 모습에서 또다른 로댕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과연 Ron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와인잔 들이키는 노숙자들

나와 아내는 노숙자들에게는 다소 인색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어린 시절 육교나 지하철 입구에서 보았던 걸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불구자들이었다. 그러나 3년 전 브뤼셀 지하철 입구에서 목격한 노숙자 걸인은 아예 거리에 와인병과 와인 잔(와인을 와인 잔 없이 음미할 수 없다는 듯)까지 벌려 놓았었다.

역시 프랑스와 벨지움 사람들은 걸인들도 달랐다. 그들에게는 돈보다 낭만이 우선이라는 듯이. 경제가 어렵고 못 살았던 한국에서 걸인 행각은 불구자들에게 한정된 일이라 생각되었다. 하물며 미국 같이 부유하고 원하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널려있는 세상에서 왜 구걸을 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없다.

세계 최강의 미군 사령부인 펜타곤, 엄청난 재원을 퍼부은 20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철수하며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 바로 펜타곤 앞길에서 구걸하며 앉아있는 젊은이 Rond을 보며 과연 정부 정책과 막대한 세금, 예산은 어디에 쓰여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한인타운에서 만난 린다

내가 만난 백인 여성 린다는 작은 핸드백과 빨간 백팩까지 완벽하게 갖춘 준비성 있는 여성이었다.

여성이 거리에 나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50대 Dirty blondie인 그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 누구의 어머니거나 아내 또는 딸일수도 있는 그녀는 한인타운의 심장부에서 구걸행위를 하고 있었다. 96도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돈이 쌓여있는 은행과 시원한 한인 사무실들이 즐비한 그리고 차가운 아이스 커피를 파는 7-11이 바로 지척에 있건만, 그녀에게는 머나먼 세상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이름 외에는 경계의 눈빛만이 돌아왔다. 많은 곳 중에 왜 그녀는 한인타운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구걸 행위도 일종의 밥벌이 행위라면 장소 선택도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한인들은 기부에 다소 ‘짠’ 민족인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우범지대에는 걸인도 없다. 아니러니 하게도 백악관 앞과 World Bank와 IMF 그리고 돈 많은 로비스트가 즐비한 Penn Ave와 K St. 등에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아름다운 건물 앞에만 나서면 마주하게 되는 노숙자들... 걱정된다며 어디에서 자느냐는 질문에 린다씨는 495 방향을 가리키며 캠프 그라운드에서 잔다고 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양 볼은 상당히 핼쑥했다.

혹시 마약 하나? 하는 선입견이 몰려 왔다. 15세기 최고 조각가 다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가 떠올랐다. 무슨 연유에서 거리로 내몰린 것일까? 분명 그 누구인가는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린다씨의 무사한 밤을 기원했다.

#똥배나온 노숙자 Edwin

내가 만난 노숙자 중에서 가장 배가 불룩히 나온 그래서 구걸하는 행위와 너무나도 안어울리는 남자의 이름은 Edwin이었다. 불과 작년까지 식당과 호텔 주방에서 쿡으로 일했다는 그는 코로나19로 직장을 잃고 병을 얻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도중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며 직장생활 중 얻은 그의 팔뚝에 새겨진 여러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 중에는 화상과 칼자국도 있었다. 주방 일이란 것이 거친 잡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병마와 전 직장에서 얻은 상처뿐이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그의 손에는 덩치에 안어울리게 작은 사인이 ‘Please help anything’ 이라고 적혀있다. 50대로 보이는 그에게 왠지 마음이 끌려서 $5을 건네자 “Thank you! I like Korean food” 하며 답한다. 순간 가슴이 내려 앉는다. $5은 한끼 식대도 안되고 팁으로도 변변한 금액이 아닌데... 그러나 내 손은 또다시 내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의 야속한 인심은 내 자신에게는 무척 관대하지만 남에게 인색한 모습을 한지 이미 오래며 그러한 나의 모습과 레퍼토리를 정당화시키며 살아왔다.

#노숙자가 만들어 놓은 외길

Edwin이 수없이 밟고 지나쳤던 잔디 위에 선명히 새겨진 외길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가나?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떠한 모습일까? 한때 나에게도 방황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 훌쩍 혼자 떠났던 파리 여행. 늦가을 어둠의 그림자들 속에서 파리 거리를 배회하다 마주쳤던 로댕의 불세출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 순간 그 마주침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생각하기에 사람이고 사람이기에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나의 방황에 종지부를 그었었다. 생각하며, 그 생각을 삶에 실천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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