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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소천

09/14/2021 | 12:00:00AM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소천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인 조용기(85) 원로목사가 한국시간 14일 소천했다. 교회는 오전 7시 13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장례예배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진행되며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맡고, 설교는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맡는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 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은 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 왔다. 유족은 조희준, 민제(국민일보 회장), 승제(한세대 이사) 등 3남이 있다. 조 목사의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은 지난 2월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조 목사는 1936년 경남 울주군에서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최자실 전도사(조 목사의 장모) 집 거실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시작됐다. 교인들이 늘면서 여의도에 대형건물을 지었고, 1973년 입당 예배 때 1만명이던 교인은 1979년 10만명, 1984년 40만명을 넘어섰다. 1992년엔 70만명을 넘어 1993년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조 목사의 목회 스타일은 ‘희망 목회’로 불린다. 조 목사가 목회의 첫 걸음을 내딛던 1960년대는 한국 경제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때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농촌을 떠나 서울로 시민들이 몰리는 이농현상이 본격화됐다. 이 시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어렵게 뿌리내리던 이들에게 조 목사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며 ‘희망’을 설교했다. 조 목사는 생전에 “저 스스로 가난이 지긋지긋했다. 가난에 한이 맺혀 천당과 지옥 이야기보다는 용기와 희망을 설교하려 애썼다. 부자 교회 못 가고 우리 교회 온 가난한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고 위로를 받는 것이 제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개신교계의 일반적 분위기와는 달리 창립 초기부터 방언(성령의 힘으로 말한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과 신유(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를 강조한 조 목사의 ‘뜨거운 목회’는 신자 수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 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을 누빌 때 조 목사는 지구 120바퀴 거리를 날아 세계 선교에 나섰다.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 선교를 꿈꿨던 조 목사는 “우리나라가 자동차, 비행기는 못 만들어도 복음과 예수를 전하는 일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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