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사 | 구독신청 |

[목회칼럼]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랑

09/19/2019 | 06:42:17AM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했다.

그중의 하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식어져 서로 분쟁하고, 배신하고, 미워하는 일들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조차도 사랑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현실이다.

1차 세계대전의 어느 전쟁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전쟁터에서 두 병사는 믿음을 나누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참호 속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하던 중에 갑자기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짐이라는 한 친구는 무사히 퇴각을 했지만, 다른 한 친구는 총탄을 맞고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그때 짐은 장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 부상당한 친구를 겨우 부축해 데리고 나왔지만, 이미 친구는 죽어있었고, 자신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장교가 “넌 미친 짓을 했다”고 소리쳤을 때, 짐은 눈을 감으며 조용히 말했다고 한다. “아닙니다, 분명히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갔을 때 친구는 내게 ‘짐, 난 네가 올 줄 알았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에는 사랑을 표현한 네 종류의 단어가 있다. 에로스라는 단어는 원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의미이지만 남녀 사이의 사랑에 주로 사용되어졌고, 스톨게라는 사랑은 형제 우애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고, 필리아라는 사랑은 주로 친구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사랑에 사용되었다. 이 모든 사랑을 넘어 무한한 희생이 동반된 사랑을 표현할 때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될 때 이 아가페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 사랑은 영원하고, 조건이 없고(엡1:4-6),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해서 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이고(롬5:8),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빌1:6). 심지어는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여 팔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발을 닦아주신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이다(요13:1-11).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 맹세까지 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 끝내 순교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핍박자였던 바울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다(고후5:14).

한센병 환자들의 고름을 닦아주는 봉사자를 바라보며 한 방문자가 지나가는 말로 “나는 백만 불을 줘도 저런 일을 못할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그 봉사자가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도 못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는 속고 속이는 세상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면 세상의 모든 미움과 분쟁과 불신을 주는 어둠의 세력들에게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와싱톤 한마음교회 이동철 목사

관련 기사보기
백악관 가을 정원 무료 공개
환절기 독감 유행… ‘주의’
페어팩스 졸업률 ‘양호’
한국 브랜드 ‘타마’ 워싱턴 상륙
[칼럼] 격랑의 대한민국
젊은층 정신건강 ‘심각’
VA‧MD 건강보험 가입 ‘양호’
세균성뇌수막염 발생 ‘비상’
페어팩스 카운티, 노숙자 지원한다
[목회칼럼] 불평을 감사로 바꿀 수 있다면
comments powered by Disqus
미주조선일보 회사소개 지면광고 구독신청 기사제보 온라인광고 인재초빙 미주조선 TEL(703)865-8310 FAX(703)204-0104
COPYRIGHT ⓒ Chosunilbousa.com 2007 - 2018 이메일 | 개인정보보호정책 | 저작권안내 | 콘텐츠 제휴문의
뉴스 및 콘텐츠를 무단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과 관련,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poweredby 4uhomepa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