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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녹아내리는 황홀한 절대군주

09/07/2022 | 07:41:42AM
감각이 녹아내리는 황홀한 절대군주

[설악산]

산에 점수를 매길 수는 없다. TV의 경쟁 프로그램처럼 어느 산의 단풍이 더 고운지, 산세가 더 화려한지 객관적인 우위를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등산객이 내뱉는 감탄의 횟수와 데시벨을 측정해 비교한다면 어느 산이 1위로 뽑힐지는 뻔하다. 산 좀 다닌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조사를 하지 않아도 이견 없는 1위가 설악산임을 알고 있다.

단풍과 산세가 어우러진 풍경의 완성도만으로 우선순위를 꼽자면 설악산은 황홀한 절대군주다.

백담사를 들머리로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서 소청대피소에 올라 하루 묵고, 희운각으로 내려와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에서 비선대를 거쳐 설악동으로 나올 계획이다. 내설악의 진수인 수렴동계곡과 설악산을 대표하는 절경의 능선 공룡을 거쳐 외설악의 백미인 비선대까지 모두 섭렵하는, 욕심 많은 명 단풍 코스다.

계곡이 남성이라면 숲은 여성이다. 어른 두 명이 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푸근한 전나무들이 숲의 기운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다. 백담탐방안내소를 지나자 숲의 짙은 향기가 기분 좋게 덮쳐온다. 설악에 왔다는, 설악을 걷고 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덮친다. 긴장이 풀리며 일행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소청대피소까지 14km를 걸어야 한다. 평평한 숲길에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빠르게 걸으며 봉정암 신도들을 추월한다.

맑다 못해 청옥으로 반짝이는 수렴동계곡의 물빛, 어느 산꾼이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감돈다. 쌓인 체증을 뚫어주는 시원한 계곡을 따라 내설악으로 든다.

반듯하게 터를 잡은 영시암에서 샘물을 마신다. 1689년 슬픔과 분노를 가득 안은 채 이곳을 찾은 이가 있었다. 숙종 15년 유학자 김창흡은 아버지 김수항이 숙청으로 죽임을 당하자 속세와 연을 끊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영원히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는 뜻으로 ‘영시(永矢)’라는 이름을 붙여 살았다. 그러나 그의 시중을 들던 하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환멸이 얼마나 컸기에 ‘영원히 시위를 떠난 화살’이란 이름을 짓고 속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나 싶다.

사설=봉정암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공룡능선. 능선 너머로 속초 앞 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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