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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영의 신한국기행] 보길도의 봄

09/08/2020 | 12:25:28PM
[이두영의 신한국기행] 보길도의 봄
조약돌, 동백수림, 미역밭…그 섬에 가고 싶다

아련한 추억과 질박한 삶에 대란 향수가 질펀한 남동의 들녘을 지나면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아온다.' 어부사시가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보길도가 나타난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은 동경의 섬. 빽빽한 동백숲과 몽실몽실한 자갈이 깔린 해면, 바다에 널린 미역밭, 고산 윤선도의 굴곡진 삶과 풍류가 배어 있는 부용동 원림, 갯비린내 나는 어촌 별미 등 보길도에는 그리워할 것들이 많다.

보길도에는 기념관 하나 없고 몰골 사납게 파헤쳐진 길도 없다. 천지사방으로 펼쳐진 바다 덕분이다. 바다는 김, 전복, 파래 등이 무진장 나오는 해산물의 보고이다. 양식 소득이 넉넉하기 때문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려 버둥버둥 정비할 필요가 없다.

동백은 보길도의 대표적인 상록수이다. 부용동 세연정과 보옥리 공룡알 해변의 동백림,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예송리 상록수림에 동백나무가 무수히 많다. 이른 봄부터 동백은 시린 바람 속에서 붉은 정염을 토하다가 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보길도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가야 제격이다. 40분 내지 1시간 걸린다. 완도 화흥포에서는 1시간 30분 걸린다. 해남읍에서 땅끝으로 가는 도중에는 고산 유적지인 녹우당과 대흥사, 미황사 등 꼭 봐야 할 사찰, 드라마 ‘허준’의 촬영무대인 중리 해변 등 명소가 많다. 보리밭의 푸르름이랴 말할 나위가 없다.

봄빛 완연한 해토머리에 야들야들한 보리싹을 된장과 함께 끓여 먹던 보리국의 추억! 아마 요즘 그런 국을 끓여내는 음식점이 있다면 웰빙음식이라고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아련한 추억과 질박한 삶에 대한 향수가 질펀한 남도의 들녘을 지나 땅끝에 이르면, 바다에 하체를 절반쯤 담근 사자봉과 땅끝전망대가 반긴다.

보길도행 배는 사자봉 밑 갈두리 선착장에서 하루 8차례 떠난다. 배는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로 나아간다. 30여분 만에 도착한 넙도는 중간기착지. 부근은 온통 양식장이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아온다.’ 어부사시가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드디어 보길도 청별항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간단하게나마 계획을 세워야 한다. 땅끝이나 청별항 매표소에서 ‘보길 노화 소안도 안내도’라 쓰인 1000원짜리 지도 한 장을 사면 매우 유익하다. ‘남도의 김정호’로 비유되는 해남의 전기철씨가 제작한 지도다.

보길도 여행은 크게 4코스. 첫째 부용동의 윤선도 유적. 둘째 망끝전망대와 공룡알 해변. 넷째 통리와 중리 해수욕장. 송시열 글씐 바위 등이다. 1박 2일 일정이면 먼저 부용동을 돌고 청별항쪽으로 나와 망끝전망대로 가서 노을을 감상한다.

이튿날 나머지를 둘러본다. 뾰족산(보죽산) 등산은 시간 봐서 한다. 청별항에서 가장 먼 뾰족산까지가 12.6km, 반대편인 송시열 글씐 바위까지가 7.7km이다.

명심할 것은 이틀 동안에 청별항에서 자전거를 빌려 보길도를 전부 보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길의 굴곡이 만만찮아 무리이다. 특히 예송리 가는 언덕길은 경사가 심하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윤선도는 해남 윤씨이지만 태생지는 서울이다.

병자혼란(1636년)이 일어날 무렵, 이미 해남에 내려와 있던 고산은 인조왕의 식구들이 강화도에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과 노비 수백 명을 모아 강화도로 향했다. 그러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말을 듣고 세상을 등지고자 배를 돌려 제주도로 향한다.

그 도중에 태풍을 만나 들른 곳이 보길도다. 화려한 산수에 반한 고산은 보길도의 화흥포에 정착해 생김새가 연꽃 같은 동네라는 뜻에서 부용동이라 명명하고, 낙서재를 지어 독서와 풍류의 세월을 보냈다.

청별항에서 10여 분 가면 나오는 세연정은 그의 풍류가 녹아 있는 정자로 부용동 최고의 명소다. 그는 흐르는 계곡을 막아 연못을 만들고 돌로 물막이 시설(석보)을 만들어 비가 오면 폭포가 쏟아지게 했으면 이를 바라볼 정자를 세웠다. 그리고는 누와 대, 못에서 무희들로 하여금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고 시조를 읊게 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은퇴한 벼슬아치의 바람직하지 않은 작태쯤으로 비난을 살 법도 하다. 하지만 당시 사회상으로 봐서 충분히 용인될 만한 일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부용동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동천석실이다. 이곳은 큰길에서 약 30분 올라가면 나오는 산속의 작은 목조 건물로서 맑은 공기와 부용동의 전망을 즐기며 윤선도가 시를 읊고 묵상을 하던 곳이다. 윤선도는 85세에 부용동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벼슬길에 나가고 영덕, 광양 등으로 유배도 다니느라 보길도를 일곱 차례나 드나들었다. 선착장인 청별항은 한자 그대로 하면 맑은 이별이다. 임금께 관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 고산의 슬픈 의지가 남아 있는 곳이다.

망끝전망대는 멋진 낙조 전망지이다. 이 해안에 서면 모래섬, 상도 , 미역섬, 옥매도, 갈도 등의 자잘한 섬들이 노을 물에 멱을 감는 듯이 보인다. 바다로 뾰족 튀어나온 뾰족산(195m)도 지척에 있다.

인근 보옥리에는 공룡알 해변이 있다. 반질반질하고 색깔이 희한한 돌들이 물에 잠겨 있다. 물이 출렁일 때 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이 해안을 뽀래기 갯돌밭이라고도 한다. 갯돌은 예송리 해변에도 많다. 시커멓고 무거운 조약돌들이다. 예송리는 무성한 상록수림을 뒤에 두고 예작도와 고깃배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아늑한 해변이다. 봄철 몽돌밭에는 늘 미역 줄기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

통리와 중리는 맞붙어 있으면 백사장이 매우 넓다. 솔밭은 바람이 잘 통하며 민박집도 많다. 중리에서 계속 들어가면 송시열 글씐 바위가 있는 선백도 해안이 나온다. 송시열은 83세에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들러 늘그막에 떠돌아야 하는 신세를 한탄조로 절벽에 써 놓았다. 예송논쟁으로 윤선도를 귀양 보냈던 그가 보길도에 초라한 신세로 들렀다는 것이 묘하기만 하다. 예송논쟁은 1659년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느냐로 벌이던 전쟁이었다. 1년, 3년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윤선도가 주축이 된 남인과 송시열이 이끄는 서인이 싸움을 벌였다. 선백도 해안은 보길도에서 해안경치가 가장 좋다. 쫙 깔린 부표 사이로 물살을 가르는 배와 바다태공의 모습에서 섬 특유의 정취가 물씬 나는 평화로운 바닷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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