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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사자'가 삼킨 코로나 19, 그 행복한 시간

05/27/2020 | 10:46:35AM
핑크빛 '사자'가 삼킨 코로나 19, 그 행복한 시간
사자산(668m)은 전남 장흥과 보성 경계에 있다. 일림산과 제암산의 사이에 해발 400m대 능선이 길게 뻗어 있는데, 그 형상이 사자 모양을 하고 있어 사자산이라 부른다. 매년 5월 초 철쭉 만개 시기에 맞춰 일림산 철쭉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축제가 취소되었다. 그 기간 동안 입산도 금지되었으나, 통제가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휴가를 냈다.

핑크빛으로 물든 철쭉평원을 포기하기 아쉬워 백패킹을 함께하는 절친이자 동생인 김혜연과 60리터 배낭을 메고 곧장 장흥으로 향했다. 장흥 시내는 한산했다. 분위기를 살피러 들어간 식당에도 손님은 없었다. 다행히 식당 주인은 “입산 통제가 풀려 산행에 문제가 없다”며 “철쭉 한창일 때 잘 맞춰 왔다”며 반겨 주었다.

들머리는 사자산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신기마을로 잡고, 임도를 따라 올랐다. 오후 비 소식에 날씨가 흐렸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철쭉에 설렘이 더해갔다. 한참을 걸어 임도 끝에 다다랐을 때, 좁은 산길이 시작되나 싶더니 탁 트인 활공장이 나타났다. 곁의 철쭉 밭이 한눈에 쏟아져 들어왔다. 매서운 해풍을 맞고 자라 더욱 선명하다는 사자산 철쭉이었다. 안개에 휩싸였으나 핑크빛은 더욱 진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의 산행 속도는 한없이 느려졌다. 철쭉 길은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다. 한걸음 뗄 때마다 서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해가 져도 숙영지까지 갈 수 없을 거라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도시의 철쭉과 달리 내 키를 훌쩍 넘어선 철쭉을 볼 때면 동화 속 신비한 꽃 터널에 온 것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계 토끼가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야속한 철쭉은 고도를 높일수록 더 넓고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 무게도 잊은 채, 핑크 빛에 홀려 한참을 철쭉 평원에 영혼을 맡겼다. 천상화원을 눈과 카메라에 담아내느라 여념 없었다. 앞에 더 많은 꽃이 펼쳐져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꽃잎 하나하나를 놓치기 싫었다. 코로나19로 갇혀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맞이한 아름다운 자연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해지기 전에 가야 한다고 서로 재촉하며 해발 668m의 사자산 정상에 도착했다.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에 멀리 보이는 제암산 철쭉 평원에 잔치가 열렸다. 핑크빛 융단 위로 성난 운해가 춤 추듯 빠르게 일렁이고 있었다. 저녁 비 소식에 서둘러 숙영지인 전망데크로 갔다.

오후 5시쯤 되자 제암산에서 넘어왔다는 모녀 등산객을 만났다. 차량 회수를 위해 원점회귀를 한다는 그녀들은 우리가 넘어온 반대쪽 철쭉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더니, 본인들이 지나온 철쭉이 더 멋있을 거라는 뉘앙스로 말하며 되돌아갔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내 몸속 세포들까지 받았던 감동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흥!”

더 이상 멀리서 넘어오는 인적이 없는 걸 확인 후 데크에 텐트를 쳤다. 바람이 강해서 비상용으로 가져온 타프로 바람이 통하는 난간을 막았다. 어두워질수록 거세지는 바람에 운해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스라이 빛을 내는 밝은 달이 철쭉과 어우러져 고즈넉하게 자리한 우리의 보금자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마무리는 소고기 삼합! 파란 하늘 아래 곰재를 지나 제암산으로 이어진 길에는 안개 대신 철쭉이 넘쳐났다. 따사로운 빛을 받아 공기 중으로 퍼져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팔에 스치는 꽃잎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밤새 맺혔던 아침 이슬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풀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 시기의 이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싱그러운 모든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여전히 굼벵이 걸음을 이어갔다. 철쭉 평전에 도착하자 등산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일의 여유로운 산행을 만끽하러 오신 어르신께서 우리의 큼직한 배낭을 보고 “산속에서 하룻밤 보낸 게 부럽다”고 얘기해 주셨다.

어르신은 이곳 철쭉은 자생목이라 일반 철쭉보다 키가 크다며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강한 해풍을 꿋꿋하게 견디며 길게 늘어선 철쭉 터널을 지나 곰재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에는 야생화가 옹기종기 피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래쪽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꽃향기는 후각을 자극했고, 우리의 꽃 산행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원점으로 복귀했을 땐, 풍성한 철쭉산행의 만족감과 함께 벌써 끝났다는 아쉬움이 함께했다. 다음 백패킹을 기약하며 본가가 장흥인 혜연이의 추천으로 키조개와 표고버섯, 소고기 삼합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철쭉 꽃잎의 부드러운 촉각, 핑크빛의 시각, 야생화 꽃향기의 후각, 삼합으로 미각까지. 답답했던 코로나19에 갇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같은 1박2일이었다. 거센 바람소리까지 좋았던 오감이 만족스러운 백패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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