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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중턱, 실향민의 유일한 정착지… 애환의 끝은 어디인가

07/03/2019 | 12:00:00AM
남산 중턱, 실향민의 유일한 정착지… 애환의 끝은 어디인가
해방촌, 가슴 설레는 이름이다. 해방, 즉 광복을 계기로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실상은 조금 더 복잡하다. 우선 해방 후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중국·만주 등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미 시가지가 형성된 곳에 그들이 머물 곳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산 중턱, 일본군이 있다가 미군이 들어온 군부대 바로 위에 자리 잡았다.

원래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곳이었다. 그다음에는 공산당을 피해 월남한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주로 평안북도 선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의 피란민들이 뒤를 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세웠고 소설 '오발탄'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왔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었다. 해방촌은 즉 실향촌이다.

종종 해방촌은 남산의 남서쪽 사면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의 이름으로 모호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용산구 용산2가동과 용산1가동 일부를 가리킨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은 아예 3호 터널과 2호 터널에서 나오는 큰길인 녹사평로 건너편이다.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후암동과의 관계도 종종 흐려지지만 차이는 명확하다.

후암동은 해방촌과는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1936년에 만들어진 경성부의 지도인 '대경성부대관'을 보면 사연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재 용산 미군 부대의 최북단 경계이며 후암동의 후암(厚岩)을 풀어쓴 이름인 두텁바위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당시에도 시가지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 남동쪽은 용산중학교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전쟁이 진행되면서 남산의 자연 지형에 불과했던 이 지역에 전몰자의 넋을 기리는 '경성호국신사'가 들어왔다. 이곳에 오르는 계단이 아직도 남아 있는 108계단이다. 전쟁이 끝나자 이 일대에 해방촌의 신화가 자리 잡았다.

근래 들어 서울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지만 사연은 여전히 복잡하다. 서울을 거대한 그림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해방촌은 일종의 걸림돌이다. 북한산에서 흘러오는 거대한 녹지의 흐름이 남산을 거쳐 한강까지 연결되는데 해방촌이 딱 그 길목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연결하면 서울의 녹지 축은 현재 반환이 진행 중인 용산 미군 기지를 거쳐 국립박물관을 지나 한강에 다다를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이촌동 일대의 아파트 단지가 또 다른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해방촌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2009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논의는 우여곡절 끝에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일부에선 아직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해방촌 상권의 발달, 도시 재생이라는 또 다른 시대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위의 사진은 2012년 여름에 해질 무렵 남산에 올라 찍은 해방촌 모습이다. 주변 지역과 확연히 구별된다. 남산 자락과 용산 미군 부대 녹지가 절묘하게 연결되면서 강보처럼 해방촌을 감싸고 있다. 누구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유독 해방촌의 가로등만 붉은빛이 감돌면서 마치 불길이 이글거리는 듯한 독특한 저녁 풍경을 자아낸다.

해방촌이 인기 있는 장소로 부상하면서 늘 따르는 수식어 '핫(hot)하다'가 시각적으로 펼쳐진 것만 같다. 해방촌을 둘러싼 논의의 열기도 아직 식지 않았다. 실향민들의 정착지였던 해방촌, 그곳은 또 다른 실향의 장소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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