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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속의 눈내린 하늘 정원, 스카이 메도우

07/20/2018 | 03:07:26AM
고요속의 눈내린 하늘 정원, 스카이 메도우
Photo Credit: pickupimage.com
워싱턴의 삼월이 참 얄궂습니다. 봄이 가장 깊다는 절기, 춘분도 지났는데 우리들 제2의 고향인 워싱턴 향리에 온 세상을 뒤덮는 하얀 눈이 하릴없이 내렸습니다. 두 번째 시행하는 월요산행, 가뜩이나 시작단계라 참가 인원이 적은데 이상 기온을 핑계로 불참들을 선언하여 여섯 명이 단출하게 길을 나섰습니다. 지난 호된 경험 때문에 감히 셰난도어로 가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지근거리에 있는 스카이 메도우 주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호들갑 잘 떨기로 정평이 나있는 미국인들이 눈을 핑계로 출근들을 하지 않은 탓에 평일과는 달리 495벨트웨이가 오늘은 한산하기만 합니다. 평소보다 이르게 로컬길로 들어섰고 도심을 벗어날수록 눈은 더욱 짙게 내리고 두텁게 쌓이고 있었습니다. 넓게 설원이 펼쳐지고 그 위로 계절을 망각한 채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는 검은 소들의 무리들이 참으로 평화롭게 여겨지는 풍경입니다. 눈이 이렇게 내려도 가슴 저쪽에는 이미 봄이 무르익고 있어 추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아늑한 기온에 바람 한 점 없으니 눈도 낭비없이 고스란히 바닥에 내려 얌전히 쌓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유난히도 많은 와이너리의 고즈넉한 고풍의 저택들도 그 평화로움에 한몫을 더 하는 듯합니다.

새 생명을 피워낸 설원

하이얀 고요 속에 빠져있는 스카이 메도우. 눈 내린 하늘 정원. 산정에 너른 목초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언제나 볼수록 마음의 평화를 얻고 가는 고향 같은 풍치로 유명합니다. 그런 이곳에 오늘은 순백의 눈들이 쌓여 그야말로 설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센터빌에서 66번을 타고 한 삼십마일 가면 17번 도로 북쪽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17번 도로 동서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서쪽으로 해발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능선에는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 까지 이어지는 3천 5백 킬로미터의 아팔레치안 트레일이 일부 통과하고 계곡을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오르내리는 Gap Run 트레일이, 능선을 따라 향촌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North, South Ridge 트레일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와 지명이 동일한 Paris의 목가적 풍경을 감상하는 Ambassador, Piedmont Overlook 트레일 등등이 펼쳐져 있고 선택에 따라 초보자들도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우리 워싱턴 지역 동포들도 즐겨 찾는 그래서 언제나 많은 인파로 붐비는 하이킹 선호지역입니다.

동쪽으로는 더 나지막한 야산에 Rolling Meadow나 Lost Mountain 트레일을 비롯 짧은 산행로들이 연결되어 어렵지 않게 산행을 즐기도록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평소 봄이면 푸른 들판에 온갖 들꽃들이 만발하여 향기를 피워내고 가을이면 들풀들이 지천으로 피어올라 곱게 채색되니 총천연색의 유화를 그려내는 그런 곳입니다. 오늘은 그 더 넓은 초원에 단색의 하얀 눈꽃들이 피어 흐드러져 있습니다. 겨울나무들이 아름다운 눈꽃으로 새 생명을 피워낸 설원. 순백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그 풍경 속으로 산행은 시작됩니다.

창백한 겨울이 머물고

자연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다른 세상. 눈길을 헤쳐 공원 입구로 들어서는데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휘어 구부러진 고목들이 신작로 갓길에 도열하여 그 무거운 하중의 눈을 힘들게 지탱하며 눈꽃 터널을 만들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산을 오르기 위해 서비스 로드를 걸어가는데 그칠 줄 모르는 눈은 더욱 주변을 어둡게 만들어 줍니다.

저 멀리 바라다보면 하늘도 산도 지평선도 아무런 경계가 없고 구분도 되지 않는 순백의 신천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저 농도가 짙은 흰색은 평원이고 그 다음이 산이며 가장 옅은 것이 하늘일 것이라는 감으로 규정하며 눈으로 지워진 산행 길을 어렵사리 찾아 갑니다. 가로수 길게 늘어진 길을 들어서니 휘늘어진 가지위로 창백한 겨울이 머물고 봄이라 찾아 돌아온 가슴 작은 도요새들이 계절을 역행하는 풍성한 폭설에 소스라쳐 놀란 듯 눈 쌓인 포도 위를 시린 발걸음으로 종종 거리며 황급히 길을 터줍니다.

애틋한 별리

개울을 따라 오르는 길. 적막하고도 호젓한 길을 오르는데 바위도 나무도 사방이 온통 눈꽃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이보다 곱고 화사한 꽃이 지상에서 또 있을까? 신이 허락하여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한 폭 유채화. 보는 가슴이 저려옵니다. 늘 인왕산이 그리웠던 미국생활 40년, 오늘 마침내 처음 산을 찾았다는 닥터 유. 더욱이 설산산행은 평생 처음이라며 몇 번을 되뇌어 감탄합니다. 유년시절 향리의 뒷산에서 검정 고무신 신고 토끼몰이 때 설산을 휘젓고는 처음이라는 빵장님.

그때 그 발엔 지금 아이젠이며 스패츠가 신겨져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이어지는 눈꽃잔치에 구수한 남도 사투리의 넋두리 같은 찬사가 입에서 거듭 흘러나옵니다. “겁나게 좋아부러. 정말로 징허네이..” 견딜 수 없는 그리움만큼의 눈이 가지에 쌓이면 그만 눈을 털어버리고 튕겨져 올라가며 다른 가지를 건드리니 눈꽃의 낙화가 도미노 현상처럼 이어지면서 애틋한 별리가 보기에도 애처롭습니다. 산객의 미동에도 진동이 일어 한웅큼씩 쌓인 눈이 떨어져 내려 정신이 바짝 들도록 머리를 감싼 후드를 세차게 두드립니다. 자연이 준비한 순백의 향연. 우리는 이곳에 초대받은 귀빈이 되어 원 없이 잔치를 즐깁니다. 그리고 또 이 잔치가 끝이 나고 세속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아름답게도 아득한 기억은 두고두고 그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봄이 오는 소리가 꿈결에도 아련한데 그 기다림과 그리움이 엉기고 엉기어 마침내 순백의 은빛 눈꽃으로 맺혀진 듯합니다.

산이 있어 외롭지 않고

그나마 모두 처져버리고 단둘이 정상을 향해 갑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또박또박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느낌이 참 생경하지만 우쭐하게도 느껴집니다. 내리면서 이미 녹은 상태의 눈이라 내리면 서로 엉켜 뭉쳐져 신발 바닥에 덕지덕지 붙었다가 가득 쌓이면 허물어져 떨어지곤 합니다. 그 엉켜 붙는 눈 때문에 점점 키가 커져서 세상을 20센티미터 위에서 내려다보니 한껏 거드름을 피울 기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높은 눈 때문에 발이 삐끗하니 허리며 무릎에 통증이 생깁니다. 겸손하지 못하게 처신한 순간에 대해 자연의 징벌이 내려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면서 혼자임을 자각하고 이러한 길은 함께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미치니 불현듯 외로움이 스며듭니다. 인간은 고독할 수 밖에 없다던 시인의 말처럼 그래서 하느님도 한번 씩 우시는 때도 있고 산도 외로워 하루에 한번 씩 그림자로 마을로 내려오고 한갓 날짐승들도 외롭고 외로워 마을로 내려온다 하였습니다.

새는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고 기뻐서 노래하는 것도 아닌 그저 습성으로 인하여 그리하는 것. 어쩌면 나도 이미 배워버린 습성으로 고독함을 느낄 때 마침내 자연을 노래하게 되고 그런 애틋함으로 가슴에 강물을 만들어 흘려보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이처럼 차분한 눈길을 걸으며 그동안 분주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일상에서 지쳐버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내가 가야할 길을 찾는 시간. 참으로 소중한 나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어 많이도 행복합니다. 적어도 오늘의 나는 산이 있어 외롭지 않고 그 산속에 귀의하여 동행과 함께 고독하지 않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보헤미안처럼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의 정상은 언제나 목초로 가득 채워진 개활지에 간간이 고목들이 버티고 있어 참으로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하는데 오늘은 모두 눈꽃으로 다시 피워내니 내 기억 속에 뚜렷한 그 풍경에 덧칠을 하여 현실과 꿈을 오가는 몽환적 착시현상이 생깁니다. 등을 밀어내는 바람에 버티어 동녘 산하를 굽어봅니다. 나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 삶의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보헤미안처럼 언제나 마음이 동하면 길을 나서고 그리움이 일면 산으로 향하고 외로움이 짙으면 산정을 오릅니다. 그래서 얻는 묘답. 또 다른 산에서 또 다른 풍광을 보며 그 감정들을 추스르는 일. 그것이 내 숙명적인 삶의 향방이라 여기며 다음 여정의 산을 어여쁘게 그려봅니다. 패스화인더가 되어 언제나 새로운 꿈의 길을 개척하리라는...... DREAMER 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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