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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난도어의 전망대, 메리스 락을 오르다

07/18/2018 | 07:04:53AM
셰난도어의 전망대, 메리스 락을 오르다
Photo Credit: pickupimage.com
셰난도어로 가는 길. 차가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정상에서 맞이할 눈꽃과 얼음 꽃의 만개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부푼 마음을 가누는데 오늘 겨울산행이자 설산산행이 처음인 다수의 수요 산행 팀들은 그 들떠있음에 차내가 이례적으로 수다스럽습니다.

세속에서는 비가 내린다 해도 해발 1천 미터의 고봉에는 분명 눈이 내릴 것이며 혹 눈이 아니라도 결빙된 아름다운 얼음 꽃이 가득하려니 메리스 락으로 향하는 길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연인과의 약속 길처럼 마냥 즐겁고 설레입니다. 메리스락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도 않으면서 비록 악천후로 공원이 폐쇄되어도 파노라마 비지터센터 아래 파킹장에서 출발한다면 언제나 산행이 가능한 곳이고 오히려 오늘처럼 기상 악화로 통제되는 날이 보기 드문 풍광을 선사하니 우리 산객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211번 도로를 서향으로 오르는 고갯길에는 서서히 만발해가는 눈꽃으로 셰난도어의 산이 풍성해져 갑니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겨울산행, 설산산행의 시작. 눈과 바람이 만든 순백의 풍경, 우리는 부푼 마음을 동여 메고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람과 함께 떠나가는 시간을 배웅하다.

일년을 기다리며 돌아온 계절, 겨울은 그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셰난도어의 산길에 풍성한 눈꽃을 피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은 눈과 결빙으로 폐쇄되었고 스카이 라인으로 진입이 불가능하여 우리 일행은 옆길을 비집고 산을 오릅니다. 겨울산행의 필수품인 스파이크 같은 아이젠을 등산화 바닥에 덧씌워 미끄럼에 대비하고 방한용 장비들을 꼼꼼히 챙겨 겨울 산행이 즐겁도록 준비합니다. 저마다 오늘 아침 악천후의 일기예보에 산행의 참가를 갈등했었다는 고백과 함께 그래도 참가하기를 참 잘했노라하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만족으로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집니다. 눈과 바람이 빚은 산길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내 디디며 바람과 함께 떠나가는 시간을 배웅합니다.

눈 소리 바람소리 그 차디참에 떨고 있는 나무들 소리. 중부 대륙을 건너온 세찬 바람은 거목마다 맺힌 눈꽃을 낙엽처럼 떨어지게 하여 길 위에 가득 누웠습니다. 또 간간히 제 크기만큼의 세월을 보냈을 거대 고사목들이 쓰러져 오늘은 백발을 이고 혹은 빙의를 입고 길 위에 누웠습니다. 빙화의 무게에 휘늘어진 살아있는 나무 가지들이 눈꽃 터널을 만들어 우리 들뜬 산객들을 환영해 줍니다. 가지들을 젖히며 걷는 길. 오늘은 베르사이유 궁전 길을 수비대의 사열을 받으며 걷는 착각의 영광을 누립니다. 수정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얼음 꽃을 헤치며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상으로 올라갑니다.

눈꽃들의 서러운 낙화가 속절없이

쉴 틈 없는 오르막을 바람에 대적해 오릅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바람이 한숨 쉬어갈 때 우리는 잠시 눈을 들어 산하를 굽어봅니다. 요정들이 뛰어 놀법한 눈의 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깊은 골마다 가득 메운 운무들이 신비로운 수묵의 풍경을 선사하고 그 위로 산정들이 점점이 섬으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풍광 앞에는 순록의 왕관에 눈을 입힌 듯 가지마다 맺힌 얼음 꽃의 빛남이 겨울 인색한 햇살에 반짝이니 천상의 풍경이며 무릉도원에 뒤질 일이 없습니다.

그 동안의 고단함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꿈결 같은 풍경. 그 길을 오늘 우리가 걷고 있음에 무한한 축복으로 여기며 다시 정상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만나보거나 경험해보지도 않고서 귀동냥이나 선입관에 어떤 사람을 기정사실화 해버리는 우를 범하며 살기도 하듯이 산도 가보지도 않은 채 규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되돌아봅니다. 이토록 진정한 겨울 산의 면모를 보면서 말입니다. 우리들 몸이 데워짐을 느끼는 순간, 영상으로 변한 기온에 가지에 맺혔던 눈꽃들의 서러운 낙화가 속절없이 이어집니다. 이제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얼음 꽃을 즈려밟으며 시공에 하염없이 떨어지는 무색 보석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점점 겨울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위대한 자연의 힘. 순식간에 온화해진 주변 기후와 스쳐가는 강풍 한 자락에 처참하게 눈꽃 얼음 꽃들은 스러져가고 등걸들을 에워싼 얼음 겉옷들이 벗겨지니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겨울 산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산행에서 이드의 자극으로 한없는 카타르시를 얻고 자족의 삶을 찬미합니다.

순수만이 허락된 이 산정에서

드디어 메리스 락 정상에 섰습니다. 속세의 모든 색이 지워진 설공, 여기서 보면 세상도 마음도 얼마나 혼탁했던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순수만이 허락된 이 산정에서 그 동안 집착의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이 회한으로 떠오르며 이제사 저 깊은 순백의 계곡으로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습니다. 푸른 산 능선은 파도처럼 구비치고 골마다 가득 메운 농무는 좀처럼 승천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들도 이 수려한 풍경을 맘껏 즐기려 함이겠지요. 일렁이는 바람에 가지마다에 맺힌 빙화들이 서로 부딪히며 청명한 음률을 들려줍니다. 겨울 산의 정취가 그대로 스며드는 꽤나 정직한 시간, 세상을 발아래 두고 서있는 이 순간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삶의 투지와 용기를 가득 얻게 됩니다. 지나치는 한자락 강풍에 또 세월의 하중을 못 이겨 고목 한그루가 얼음 옷을 입은 채 길을 가로질러 스러져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무한하지 않은 법, 저 고사목처럼 덧없이 스러져 갈 삶인데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무슨 연유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회한이 이는 순간입니다. 겨울 산, 사람의 길도 마음의 길도 곧잘 얼어붙어 버리는 계절. 여느 때보다 더욱더 뒤돌아보고 자주 더불어 지낼 일입니다. 산도 그 누구인가와도 말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의 정리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보듬으리라 다짐하면서 산을 내려갑니다.

깊은 산에 들어 자연의 시계에 마음을 맞추면

겨울 산행, 더구나 주말을 피한 주중산행. 셰난도어의 메리스 락 등정 구간은 산객들에게는 꽤나 명성 드높은 산행로인데도 오늘 오가는 길에 아무와도 조우하지 않았습니다. 고요하고 차분한 겨울 산길.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또 끝없이 이어지는 자신과의 대화로 우리들의 영혼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겨울 산처럼 비워낸 마음으로 오늘처럼 순백의 길을 가노라면 번다한 잡념들이 모두 사라지고 혼돈스러워진 삶의 방향의 이정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곳입니다. 산이란 산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겐 세속의 삶을 영위하다가 베어진 생채기들이 아려올 때 그 산에서 치유 받곤 하고 거듭되는 삶의 아픔도 고단함도 산에 묻혀 그 통증을 잊기도 하지요.

세상의 시간들이 버티기엔 사뭇 버거울 때 깊은 산에 들어 자연의 시계에 마음을 맞추면 버림과 비움의 교훈으로 묘답을 얻을 수 있는 곳. 산이 늘 그리운 우리는 이렇게 간헐적으로 찾는 산이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재충전된 에너지를 얻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오늘처럼 티 없이 맑은 설산 속에 묻혀 지낸 시간동안 깨끗이 정화된 순수한 영혼을 얻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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