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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셰난도어의 명산 올드랙

07/15/2018 | 08:28:23PM
버지니아 셰난도어의 명산 올드랙
Photo Credit: pickupimage.com
혹자는 사계절 중 겨울산행이 제일이라 합니다. 주체할 수 없이 솟아 흐르는 땀과 성가시게 달라붙는 날벌레들. 그런 짜증스러움 없이 깔끔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겨울산행.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산세를 그대로 볼 수 있고 가난한 가지사이로 드러나는 산의 전라. 산의 전부를 볼 수 있어 좋다고들 합니다. 또 도래지로 날아 가버려 새들의 울음소리조차 없는 무섭도록 적막한 산, 그 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어 좋다합니다. 게다가 비를 예상하고 갔다가 느닷없는 하얀 눈과의 조우에 마음이 들떠서 어린 아이들처럼 마냥 기분 좋은 산행도 하게 됩니다. 산에 가면 얼마나 추울까하는 속인들의 염려와는 달리 한 5분 정도 추위를 헤치며 걷다보면 이내 몸에 열이 나면서 추위는 거짓말처럼 말끔히 가시고 오히려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힙니다. 몇 겹으로 입은 상의들을 하나씩 벗으며 기후에 순응하게 되는데 생각난 듯 이따금 한줄기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차라리 상큼하도록 쾌적합니다. 힐링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 겨울산행이 주는 즐거움이자 행복입니다.

셰난도어의 명산 올드랙

들뫼바다 수요산행 팀들이 벼르고 벼른 셰난도어의 명산 올드랙 정상을 넘보며 길을 나섰습니다. 평일에도 산행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구성원들이라 마음마저도 느긋하고 후덕한 처사들이 많이들 눈에 띕니다. 온갖 다양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와서 기쁨으로 나누어주는 이들, 맥다방이나 별다방에 들러 한잔씩 커피를 쏘는 이들, 곡차를 열심히 챙기는 이들. 저마다의 성의를 보태니 명산을 향해 가는 길이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해가 무척 짧아진 요즘, 마음 놓고 느긋하게 산행을 즐길 여유가 예전보다 못한데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감하여야 합니다. 오늘은 기어코 정상을 오르기로 작정을 하였기에 평소에는 사용치 않던 화이트 오크 캐년 폴스 트레일로 진입하는 뒷길을 택해 오르기로 했습니다. 바위를 타는 재미는 덜하지만 이내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며 걷게 되는 풍광 좋은 산길입니다. 올드랙 트레일은 우리 워싱턴 인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행로로 정상부분이 온통 거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치도 단연 압권일 뿐 아니라 그 바위들을 이용해 오르는 길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을 시즌 때는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로 종일 몸살을 앓도록 아름다운 산입니다.

기묘한 등산길인 올드 랙

셰난도어 하이킹 코스 중 최고 난코스로 인구에 회자되는 바위로 이루어진 기묘한 등산길인 올드 랙(3,268피트)은 산 정상의 대부분이 수억년 전 선캄브리아 시대의 지각변동으로 마그마의 용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강암이 주를 이룬 기암괴봉이 장관입니다. 곳곳에 펼쳐져 있는 절벽아래 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흔들바위 모양과 거북바위 등등 덩어리 진 기암괴석들이 즐비하여 바위의 형상에 이름들을 붙여주며 걸어도 재미있는 코스입니다. 울창한 수림 속에서 데이지를 비롯해 산 월계수, 레드버드(박태기 나무과)의 만개를 보는 즐거움이 봄과 여름 산행에서 얻는 수확이라면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협곡의 풍광이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고 겨울이면 민머리를 한 바위산에 눈이 내려 쌓이면서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단아한 한 폭의 동양화를 접한 듯합니다. 사철 다른 옷을 입는 산. 그래서 우리는 늘 새로운 산의 모습을 보게 되어 물리지 않나 봅니다.

내 삶의 궤적도 뒤돌아보게 되는

들뫼바다와 함께 하기로 한 대한 산악연맹 재미 버지니아 지부장인 최연묵씨의 안전에 대한 간단한 교육과 장비 사용요령 등의 강의를 들으며 스트레칭도 함께 합니다. 잘 걷는 A팀과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B팀으로 나누어 출발하여 각자의 도달할 수 있는 목표만큼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수채화처럼 희미하게 별로 화려하지 않은 겨울 산에 한 스무 명 넘게 산객들을 풀어놓으니 원색으로 입은 등산복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합니다. 소방도로를 따라 한 마장 걸어 올라가는 길은 넓게 잘 닦여져 있어 서로들 어께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한 가지 화두로 저마다 다양한 철학들이 쏟아집니다. 한 오륙십 살아온 인생만큼 깊이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견해들입니다. 이처럼 또 산에서는 더 많이 살아온 선배들의 삶을 들어보며 내 삶에 견주어 간접 경험을 해보는 유익한 시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모두 다르듯 저마다 개척해온 삶의 뒤안길을 함께 들어가다 보면 내 삶의 궤적도 뒤돌아보게 되는 의미있는 시간들입니다. 갈림길에 이르러 올드랙 정상을 오르는 길이 오른편으로 이어집니다. 저 멀리 산의 정상이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고 검푸른 바위 정상 뒤에는 살짝 덧칠을 한 듯 옅은 구름이 더욱 깊고 더욱 푸른 창공에 뿌려져 명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산행로 옆으로는 한 아름 가득할 것 같은 거목들이 버티어 도열해 있고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산객들의 발에 눌리었는지 흙길이 콘크리트 포장길처럼 다져져 있습니다. 600미터 고도에 산허리를 휘휘 돌아 가슴엔 저마다의 삶의 각오를 다지면서 정상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들 갑니다.

신앙 같고도 또 형벌 같은 정상주

참으로 오랜만에 밟아보는 올드랙 산의 정상. 꼭 정상을 밟아야만 산행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해도 그래도 그 정상에는 소중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그 살아온 과정도 중요하듯이 산을 오르면서도 순간순간 넘긴 노고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고 그 곳도 정상만큼 의미가 주어져 있습니다만 그래도 우린 아직 속인이기에 정상을 밟았다는 그 자부와 대견함이 스스로를 만족하게 합니다. 다행히 올드랙 정상은 전화가 터져서 인증샷을 찍어 지인들에게 열심히 전송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엄청난 과장도 섞였겠지요! 저 멀리 촌가들이 아늑하게 내려 앉아 있으니 우린 참으로 멀리도 왔나 봅니다. 시간마저 오롯하게 정지된 듯한 올드 랙의 정상 풍광은 고즈넉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세속으로부터 제법 멀어진 정상에 서니 그 세찬 삭풍이 오히려 머리를 식혀주고 한 짐 가득 배낭 속에 담아간 세속의 번다한 잡념들을 다 버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토록 청정했던 수목들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고 그 화려했던 산들도 이 겨울엔 퇴색된 초라한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심한 열병을 앓고 난 내 모습처럼 초췌한 겨울 산. 오늘 따라 내겐 더욱 신앙 같고도 또 형벌 같은 정상주 한잔을 들이키며 그 마음의 치유를 꾀합니다.

인연이 아니었던 것을

겨울산은 모두 다 버렸습니다. 버렸기 때문에 비었고 비었기 때문에 또 다시 채울 수 있는 것. 다가올 풍요로운 계절을 대비해 모두 버린 것일 겁니다. 다시 채울 수 있는 비움. 나에게 필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인연이 아니었던 것을 필연이라 우기며 산에서 맺은 작은 인연 산에다 몰래 묻어두고 왔어야 했는데 어쩌다 속세로 까지 그 인연을 이어서 그렇게 힘들어 해야 했던지.. 회자정리의 인간 법도를 왜 거부하며 미련토록 옷깃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였던지.. 송구영신의 지혜로 새로운 만남에 부응하며 옛것을 잊어야 했는데 집착의 욕심에 빠져들었던지.. 한없이 빠져들 듯 깊고 푸른 하늘에다 어지러운 사념을 모두 버리고 나니 마음도 머리도 깨끗하게 정화가 되는 듯 한층 부드러운 마음이 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이 겨울이 깊기 전 다시 찾을 때는 꼭 봄을 위한 꽃씨하나 양지바른 곳에 심어두고 오리라 다짐합니다. 그리하여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한번 씩 떠올리며 산정에 심어둔 오늘의 이 각오를 되새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이 올드랙 정상에 서서 쇠잔해진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다시 또 다른 정상에서 포효하는 거인이 되리라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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