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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향기 가득한 셰난도어 Rapidian Camp 트레일

07/13/2018 | 11:29:57PM
여름향기 가득한 셰난도어 Rapidian Camp 트레일
Photo Credit: pickupimage.com
종달새 나래 깃에 실려 온 봄은 셰난도어의 양지바른 곳부터 피어나고 있습니다. 비록 저 멀리 잔설이 허허롭게 희끗한채 불어오는 바람 끝에 봄이 매달려 있어도 가슴 언저리부터 따스해오는 느낌은 정녕 내 마음은 이미 봄을 맞이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 언제 어느새 돌아 왔는지 모를 산새들의 노래 소리들이 더하여 즐거운 산행 길. 계절은 오감을 두드리며 다가오지만 아무래도 시각적인 인지는 늘 나중입니다. 산은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은 듯하지만 오감을 열고 산하를 보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잰 발걸음을 늦추고 여유 있게 길섶을 살피면 여린 새 생명들이 그 두터운 동토를 비집고 움을 틔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삶의 경이와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기 머금은 골짜기엔 연록 색으로 채색한 이끼 풀 들. 그 사이로 흐르는 셰난도어의 봄 냇물 소리는 전날 내린 비가 더해져 청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느새 봄이 들어 봄 향내가 물씬

오늘은 언제나 지나쳐도 푸근하게 안겨줄것 같은 셰난도어 빅 메도우에서 두어 마장 남하한 곳에 그 옛날 후버 대통령의 별장이었다는 Rapidian Camp 트레일 7.4마일 루프를 걷기로 했습니다. 산은 어디서나 옛이야기를 품고 있듯이 오늘 이 산길도 마피아를 비롯한 범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CIA 국장 출신 후버가 1929년 31대 대통령이 되어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선 길입니다. 하늘 길 스카이라인 53마일 지점 Milam Gap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Mill Prong Trail을 따라 내려가 별장을 만나 Laurel Prong Trail로 올라 에팔레치안 트레일을 따라 하산하는 아름답지만 녹녹치 않은 코스입니다. 초반 2마일은 내리막길로 몸을 풀 듯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동무들과 어께를 맞대고 걸어갑니다. 갓길에 부끄럽게 피어나는 봄나물들이 발길에 흔들리는 듯한데 문득 농가월령가의 삼월조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전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 캐어 오게.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분은 엮어 놓고 이분은 무쳐 먹세”. 물론 음력이지만 2월이 고들빼기, 씀바귀, 물쑥, 달래, 냉이 등 들나물의 계절이라면 3월은 취나물, 버섯, 두릅, 고사리, 고비, 도라지 등 산나물의 계절입니다. 오늘 셰난도어에는 어느새 봄이 들어 봄 향내가 물씬합니다.

심산유곡의 정취

한참을 부산하게 떠들며 내려가다 거의 캠프에 다다를 지점에 명소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Big Rock Falls. 울창한 주변 수목들이 호위무장들처럼 도열해있고 넓디넓은 암반위로 물길이 모여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가관을 이루어 심산유곡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고국에는 설악, 치악과 더불어 삼악의 하나인 월악산이 있습니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 담겨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수경대. 이 빅락 폭포의 큰 용소가 흡사하게 닮아있습니다. 손을 씻어 헹구고 한웅큼 들어 마십니다. 명치까지 저려오는 차디찬 산골물의 청량함. 흔들리는 차량으로 먼 길을 온 탓에 몽롱해진 영혼을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모두들 살아가는 동안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의 모습을 자연과 함께 사진으로 남기고 길을 재촉합니다. 큰 개울에 듬성듬성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며 이런 생각에 미칩니다. 길이라는 것이 산과 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평탄한 길만이 없듯이 산도 만나고 물도 만나고 그리하여 돌아도 가고 건너서도 가고. 인생길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구나 언제나 변화하는 산과 물. 그래야만 하는 내 자신. 오늘의 물이 어제의 물이 아니듯이 지난 계절의 산이 오늘의 산이 아닌 것은 모두가 살아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나도 끝없이 생동하여 변화해야함을 자각합니다.

미 대통령의 여름별장. 영화롭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 표시판으로만 남은 터를 둘러보고 맑은 물이 흐르는 위에 걸쳐진 목조다리를 눈여겨봅니다. 송어들이 많이 서식하여 나무색을 닮은 냇물위의 한적한 다리는 아무도 지나지 않아 그냥 두어도 그림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옛날 후버대통령 부처가 기념으로 남긴 흑백 사진이 기억나 8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모습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천연색으로 덧칠을 해봅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노래한 옛 성현의 시구를 읊조리며 인생무상, 인간만사 세옹지마를 다시 한번 되뇌어봅니다. 인생, 그저 한갓 꿈이려니..

수수한 내 어머님 같은 봄 산

아직 갈 길이 멀음을 자각하고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데 어느새 흥건하게 땀에 젖어가는 몸을 느낍니다. 온갖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상쾌한 기분을 맛보며 그 고통마저도 기쁨으로 승화시켜 즐거이 등반을 합니다. 2마일 정도의 길을 줄기차게 올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니 드디어 그 보상이 우리에게 내려집니다. 수 천길의 벼랑 끝으로 이어진 산길이 1마일 가까이 이어지는데 아름답기 그지없는 명경을 선사합니다. 완만하게 개설된 오름길 좌편에는 산이 높아 더욱 깊어진 골짜기가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베일로 가려져 환상의 풍광을 보입니다. 멀리 가난한 가지사이로 펼쳐지는 능선의 물결은 또 하나의 선경을 더해줍니다. 겨울이 물러갔지만 아직은 봄이 오지 않은 산. 어찌 보면 산이 가장 볼품없는 때이기도 하지만 후미진 그늘에는 아직도 얼은 채 수정체가 매달려 있고 해빙의 물기를 머금은 풀과 나무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는 생동감을 느낍니다. 비록 장대한 설경의 겨울 산이 아니어도 화려하게 꽃피고 잎 트는 봄 산이 아니어도 산이 가장 산다운 때는 지금이 아닐까싶네요. 가식도 없이 과장도 없이 어느 것으로도 치장하지 않은 화장기 없이 수수한 내 어머님 같은 봄 산. 오늘 그 품에 안겨 뒤늦은 회한의 사모곡을 가슴으로 부르며 이른 봄 산을 오릅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놀라운 합일

무거운 발걸음에 가쁜 숨을 싣고 한발 한발 더디게 올라 이른 곳. 정상을 오르는 것은 언제나 험하고 힘들기 마련입니다. 산을 오르는 것도 우리네 인생 목표를 오르는 것도 포기하거나 주저할 수 없는 나를 넘는 과업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산은 땅을 하늘과 연결하는 대지의 꼭지점이라 하늘과 더불어 우주 삼라만상의 성스러운 기운이 내리는 곳입니다. 어느 산이라도 그 정점인 산정은 영봉이 아닐 수 없는데 산을 오르며 산이나 오르는 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이가 자연과 하나 됨을 봅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놀라운 합일. 이것이 우리가 산을 오르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상에 서서 이제는 아득히 멀어진 발아래의 세상을 굽어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데 아직은 매서움을 버리지 않은 북풍이 한결 세차게 불어와 주봉을 넘어갑니다. 잠시 느슨해졌던 삶의 고삐를 다시 힘껏 죄면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함을 자각하고 큰 기지개를 켜보는데 제법 많이 길어진 하루해가 서녘하늘로 기울다말고 멈추어 서서 어서 내려가라고 우리의 등을 떠밀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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