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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에 아버지 기억

06/14/2019 | 12:56:02PM
오늘 아침 일어나 세안하고 바라본 거울에 4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다.

한평생 친지들도 나도 어머니 닮아서 외탁했다고 했었는데 반백 머리에 주름살, 그리고 세월의 무게에 탄력을 잃고 늘어진 피부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마치 습자지 겹쳐 놓고 본뜬 것 같은 느낌이다.

올해로 나는 진갑인데 마음은 아직 젊다고 생각되는게 착각일까 아니면 희망사항일까. 옛날 같으면 작년에 환갑잔치하고 이젠 노인의 반열에 올라 사랑방에서 과묵하게 지냈었을 텐데 나는 엊그저께 골프채 둘러매고 81타를 몰아치며 18홀을 걸었다.

아버지는 69세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명을 예측할 때 부모의 명과 비교한다. 어머니는 92세까지 장수하셨지만 그게 어디 수학공식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는 바이다.

나는 직업상 오래전부터 죽음을 내려놓은 지 오래다. 미 해병대와 LA 경찰 생활을 하면서 목숨에 연연했다면 아마 제대로 일도 못했을 것이다. 30년 넘게 청·장년을 그런 마음으로 생각하며 살아서 그런지 아직 나는 어떤 두려움이나 목숨의 미련은 못 느끼는 것 같았는데 지난 어머니날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중 모두 함께 ‘어머님 은혜’를 합창할 때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한 것은 이제 나도 늙었음이 아닐까.

어렸을 적 어머니와 목욕하는 게 싫었던 이유는 너무 아프게 수건으로 때를 빡빡 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업관계로 자주 뵙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목욕은 기쁜 기억으로 남아있다. 비누로 거품을 만들어 미끌미끌 닦아주시던 손길이 그립고 탕 안에 울리던 아버지의 노래, “아 으악새 슬피 우는…,” 아직도 엊그제 같고 나중에 알았지만 으악새는 새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밑에서 걱정 없이 넉넉하게 살았는데 전가족을 기회의 땅 미국에 데려다 놓으신 아버지는 아마 기력을 모두 쏟아버리고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것 같다.

일인당 오백 불의 허가된 이민 지참금으로 시작된 미국 생활은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인도 아래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신은 할 일을 다하고 천국에서 편하게 쉬고 계시겠지만, “아버지! 그 은혜에 보답할 시간을 주시지 않은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현관에 걸어둔 아버지의 유일한 유물을 오늘도 본다. ‘홍익인간 의담’ 아버지가 말련에 버려진 나무판자를 다듬어 한문을 음각으로 새긴 글이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홍익인간’ 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며 교육이념이다”라고 설명돼 있고 ‘의담’ 은 의의롭고 편하다는 뜻이다.

어릴 때 국민 교육헌장을 외우게 했던 완고하고 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도 재물을 탐내지 않고 한평생 민중의 지팡이로 보낼 수 있었나 보다.

오는 아버지 날엔 생존해 계신 아버지를 따뜻하게 안아 드리면 좋겠다. 나는 LA 뒷산에 올라 야~호~ 대신 그리움을 담아 외쳐야겠다. 아버지~

전 LA 경찰국 수석 공보관 제이슨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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