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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태권도와 나라 사랑에 평생 바친 사람”

09/09/2016 | 12:00:00AM
[인터뷰] “나는 태권도와 나라 사랑에 평생 바친 사람”
이승만·박정희 기념연구교육재단 설립한 양동자 박사

미쳐야 미친다. 무엇이든 몰입해야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큰 뜻을 품고 매진하다보면 언젠가는 거기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과정 속에 고난이 있다. 역경이 있다. 뜻하지 않은 도전을 만나고 좌절도 하게 된다. 그러나 대의를 품은 사람은 멈출 수 없다. 작은 실패는 오히려 약이다. 힘을 솟게 만드는 강장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조국 건설이라는 꿈에 미쳐있는(obsessed) 분들이었죠.”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기념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재단을 지난 1월17일 동시에 창립한 양동자 박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두 어른을 이렇게 소개했다.

창립기념 포럼을 열었고 탄신 141주년, 서거 51주년 행사 등을 열어 재단 발족의 취지와 목적, 앞으로의 사업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조만간 홈페이지가 완성되면 차세대 교육이 중점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큰 바위 얼굴을 보고 자란 소년은 결국 큰 바위가 됐다. 두 어른이 한국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굳게 믿으며 그들의 위대한 삶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는 양동자 박사의 나이도 이제 80쪽으로 가까워졌다.

태권도 세계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혁혁한 기여를 한 그에게 조국은 201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포상해 감사를 표했다. 가라데가 판을 치던 미국 땅에서 1970년대 말 ‘태권도’라는 이름을 뿌리 내리게 하고, 결국은 가라데를 퇴출시킨 일은 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40년간 하워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미 태권도연맹 회장, 미국 올림픽위원회(IOC) 상임위원 등을 맡으며 펼친 스포츠 외교는 정리가 벅찰 정도다. 고등학생 시절 서울에 단 두 명 있었던 유도 3단 유단자였던 그가 100개가 넘는 나라를 방문하며 국제 스포츠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로 바뀌리라는 것을 상상한 인물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가 살아가면서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어느 정도 단초는 찾을 수 있다.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시야를 떠나지 않았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양동자라는 이름 석자가 부끄럽지 않은 삶은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도전과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여정을 잠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가 추앙하는 두 어른 만큼이나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교훈들이 많아서다.

큰 꿈을 품고 서울로 1940년(양 박사는 사실 토끼띠라고 했다) 충북 보은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용문고등학교에서 유도부 생활을 했다. 워낙 실력이 탁월해 경희대를 풀 스칼라십을 받고 입학했고 바로 미 8군에서 장교와 사병들을 지도하게 됐다. 한국 유도계의 레전드 석진경 선생이 스승이다. 한 달에 200달러씩, 당시 돈으로 적지 않은 수입이 있었지만 집은 늘 가난했다.

양 박사는 “그 때부터 미국 유학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용산 미군부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느끼는 바가 많았다. 장교 식당에서 가끔 햄버거를 하나 먹으면 그 다음날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5.16 혁명 즈음의 힘들고 혼란스러운 한국 상황 속에서 그런 경험들은 작지만 큰 충격이었다.

대학은 마쳐야 하기에 국가고시를 준비했고 양 박사는 경희대 체육학과 최초 석사 학위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기록은 또 있다. 그 때문에 카투사에 체육병과가 생긴 것이다. 8개월 동안 복무하며 미국을 더 알게 됐고 영어도 착실히 늘었다.

“대회 나가면 우승컵 타오고, 학교에서는 외국 교수들을 통역하고...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김포공항을 떠나던 날 석진경 교수, 김명복 체육대 학장, 민관식 체육회장, 이런 분들이 전부 나와 배웅을 해줬습니다. 당시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며 공항 지붕 라운지에서 손을 흔들어줄 수 있었죠.” 양 박사가 웃음을 띄며 회상하는 과거다.

유학시절과 스포츠 외교 그 때가 1966년. 아이오와대학에 오자마자 유도 조교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젊었지만 워낙 미국 인사들과 친분이 많았던 탓에 다음 여름에는 워싱턴 포스트에 잠시 일하러 오기도 했다. 스포츠 담당 기자를 도와 자료를 찾아주는 등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어디를 가든 인정받는 실력과 성실함은 닥터 샘 반스 하워드대 학장과도 인연을 갖게 만들었다. 1967년 가을부터 조교수로 일하게 된 것이다. 스포츠 행정을 가르쳤다. 중요한 사안들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스포츠 행정을 배운 탓으로 그는 돌린다. 그 덕분에 그는 AAU(Amateur Athletic Union), USOC, ICHPER-SD(세계체육학회)와 관련돼 일했던 모든 기록을 다 정리해 두고 있다. 단순히 자료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출판물 제작에 직접 참여했고 기고했다.

1977-1980년용 AAU 태권도 룰을 정리한 책자의 편집자는 양 박사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자의 이름에 ‘TAE KWON DO’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도장들이 있었지만 태권도라는 이름을 공식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가 최초라고 볼 수 있죠.” 양 박사는 현장에서 태권도 보급에 힘쓴 많은 태권도인들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뒤에서 조용히 펼쳐진 이런 노력이 없었으면 가라데를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유도가 올림픽 공식 종목이 된 해는 1966년. 태권도는 1988년부터 두 번의 시범 종목이었다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됐다. 그 때의 감격은 양 박사에게 아주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두 어른을 차세대에 알려야” “이승만 박사는 늘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살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죠.”

양 박사의 조국애는 이제 두 대통령을 향한 시선에 나타난다. 소중하게 태어난 조국의 영광을 다시 찾고 민족 번영을 이루는 것은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족적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섭리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어요. 우리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두 위대한 어른이 나타난 것은. 한글학교들이 한글만 가르쳐서는 안돼요. 조국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고, 위인들을 삶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한국 초대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워싱턴 DC 노스웨스트 16가에 이승만 박사가 거처하던 곳이 있다. 이곳을 구입해 이승만 기념관으로 만들 생각이다. 1만2,000 스퀘어피트의 건물 안에 살면서 한민족을 살리는 비전을 키웠던 이승만 박사처럼 한국이 다시 웅대하게 비상하는 꿈을 키우는 훈련을 하는 장소로 만들 생각이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때 친구들과 가끔씩 라운지에서 사회 문제를 토론할 때면 뭔가 이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지식이 남못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뭔가 딸린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그게 성경에 바탕을 둔 역사의식과 정신이었습니다.

이 박사와 박 대통령이 남긴 어떤 유산보다 값진 ‘국가 건설, 민족 중흥의 비전’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 양 박사의 꿈이다. 두 개의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가는 양 박사의 열정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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