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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드선교회 국제대표 이원상 목사

02/14/2013 | 12:00:00AM
단순히 노익장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끝없는 열정과 도전의 산물이라는 게 합당할 것이다.

이원상 목사는 지난 2010년 영국 웨일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흔이 훨씬 지난 나이였다.

흔히 어느 만큼 명망을 이룬 나이에 수여 받는 명예 학위가 아니다. 기독교 초대 교회의 교부 가운데 한 명인 요한 크리소스톰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PhD) 학위를 따 냈다.

5년 간의 각고 덕분이었다. 담임 목사를 은퇴한 이후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평소 깊은 관심을 가졌던 분야를 순수하게 공부했다.

이 나이에 박사 공부를 한다는 게 어떤 지난한 과정이고 얼마나 힘겨운 지는 누구나 가늠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이요, 공부 자체가 헌신이다. 이 목사는 와싱톤중앙장로교회를 26년 동안 담임 목사로 섬겼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은퇴한 다음에는 시드(SEED)선교회 국제대표로 선교에 몰두하고 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는 이 목사가 유일하게 담임 목사를 맡은 단 하나의 교회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이 목사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유학 길에 올라 댈러스신학대학원(Dallas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수학했다.

이곳에서 구약성경과 연계해 근동지역학을 공부하던 중 지난 1977년 와상톤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그리고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은퇴했으니 그의 간단한 이력은 강한 인상을 준다.

“어린 사람들이 교회에서 자라 이제 청장년으로 교회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믿음 생활을 하는 걸 보는 게 보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다 신앙을 갖게 된 뒤 쭉쭉 성장하는 분들이 열매이고요.”

이 목사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알토란 같은 시기를 바친 담임목사 시절을 회상하면서 ‘사람을 키운 게’ 가장 큰 보람이다 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날 인터뷰를 비엔나에 위치한 올네이션스 교회에서 하자고 제의했다. 자택에서 가까운 연유도 있지만 이 교회의 성전은 이 목사가 중앙장로교회 담임으로 건축한 곳이다. 그에게는 온갖 감회와 추억이 얽힌 장소일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성전을 건축한 일도 목회 여정에서 기억에 남는 큰 일 중에 하나다.

“1985년 입당했지요. 처음에는 3.5에이커에 불과했지만 나중에는 12에이커로 커졌습니다. 본당은 이완철이라는 분이 설계했고 지금 영어권 예배당은 미국인이 디자인했어요. 그러나 이조차 비좁아지면서 제가 은퇴한 뒤 2010년에 센터빌 성전으로 이전한 거죠. 80에이커에 건축 비용만 5500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한인 교회로는 물론이고 이 일대에서 맥클린바이블처치를 빼고는 가장 클 겁니다.”

이 목사가 현재 섬기고 있는 시드선교회는 지난 1990년 시작한 중앙선교회(CMF)가 모태다. 10년이 지난 뒤 개교회 선교 차원을 벗어나자는 취지로 뉴욕장로교회와 연합해 새롭게 출발했다.

지금은 140여 선교사 가정을 36개국에 파송하는 국제적인 선교단체로 성장했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캐나다, 브라질에 각각 지부를 두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국에 보낸 의미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미주 한인도 선교 대열에 앞장서야 한다는 미션으로 발족한 겁니다.”

선교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은 교회가 너무 일방적으로 자기 종교를 타문화권에 강요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목사의 설명은 간단하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니까 순종하고 실천해야 하는 겁니다. 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암을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됐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걸 혼자만 숨겨놓고 사용해야 옳습니까? 당연히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알리고 나눠야죠.”

복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그의 사랑을 함께 경험하도록 애쓰는 일이 바로 선교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외면할 수 없는 사명이라고 이 목사는 강조했다.

시드선교회는 밴쿠버에 훈련센터를 마련하고 선교사 후보 가족을 40일간 훈련시킨다. 자녀들도 동참한다.

훈련센터 이름이 ICMS(Imitating Christ Missionary School)이다. 즉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선교사 학교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최초의 선교사이므로 모든 선교사는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 그대로 모방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교는 교회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상 명령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선교단체는 이를 돕는 전문기관이지요. 어디까지나 선교의 주체는 교회입니다. 이제 선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교회를 세웠으니 설립 목적에 맞게 교회가 선교에 앞장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선교할 때 문화적 우월감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선교 대상국 주민을 낮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선교가 가능해집니다. 또 돈의 힘에 의지하는 선교는 얼마 못 갑니다. 낮은 자세로 주님께만 의지하는 선교가 궁극적으로 성공합니다.”

지난 목회자 일생에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 “매주 손님 접대에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듯 좀더 성경을 깊게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목사로서 이 보다 더 이상 귀한 일이 없습니다. 매 주일 후회없이 이렇게 준비하고 설교하면 후배 목사들도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 목사가 꿈꾸는 비전이 있다. 한인 기독교의 선교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근본적인 일들이다.

“후방에서 최전선을 후원하는 중보기도센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또 선교사님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자녀 교육을 위해서 선교사 자녀 기숙사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은퇴해서 여생을 보낼 주거지도 있어야 합니다. 이제 한인 교회의 선교도 이런 차원까지 질적 향상을 이뤄야 할 때입니다.” 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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