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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도 혼술도 때로는…

05/07/2019 | 07:14:51AM
혼밥도 혼술도 때로는…
한때 점심·저녁 약속을 잡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 중 누구도 연락하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혼자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먹고, 때론 술도 마시다 보면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대사가 떠올랐다. "극심한 공복(空腹)이 찾아왔을 때 잠시 동안 그는 자기 멋대로 되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자신에게 주는 포상(褒賞)."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게 익숙한 한국인 중에도 점점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이른바 '혼밥·혼술'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문화를 예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 필요한 이들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도 늘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독일주택'은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은 이들의 보금자리다. 독일 사람이 주인인 게 아니라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네'라는 뜻을 담은 독일주택(獨一酒択)이라고 한다. 고즈넉한 한옥 외관 그대로 살린 가게 분위기에 한번 빠져들고, 다양한 주류가 갖춰진 메뉴판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다. 지난 주말 낮 '오늘의 추천주(酒)'는 생맥주인 '올드 라스푸틴'. 러시아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수도사의 이름이 붙었지만 엄연히 미국 흑맥주다. 짙은 맛에 초콜릿향이 감돈다. 고소하면서 진한 맛이다. 마당 가득 햇살이 쏟아진다. 한잔하기 딱 좋다고 생각하던 차에 가게 주인은 "20·30대 여성들이 낮에 혼자 와서 1~2잔 하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준다. 내친 김에 싱글몰트 위스키 한 잔을 더 시켜 홀짝거렸다. 좀 더 이 고즈넉함을 즐기기 위해서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면 슬슬 출출해진다. 황학동의 고깃집 '그릴1492'로 옮긴다. 지리산에서 가져온 두툼한 돼지고기를 스테이크식으로 구워먹는 곳이다. 보통 고깃집 같지만, 술집 바(bar)처럼 마련된 자리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주위 시선 신경 쓰지 말라고 자리 양쪽으로 발을 쳐준다. 출장 온 외국 비즈니스맨이나 인근 직장인 중 혼자 밥을 먹으러 오는 이가 많다는 걸 눈여겨본 주인 박상훈(46)씨는 "혼자 고기 구워먹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혼자 먹기엔 흑돼지 스테이크(180g)가 딱 좋다. 육즙이 배어나오는 고기 한 점을 제주도식 멸치젓에 찍어먹은 뒤 생맥주 한 잔 하면 옆자리의 알콩달콩한 연인이 부럽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7.1%를 차지했다. 혼자 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이웃 나라 일본처럼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서울 상수동 '김씨네 심야식당'은 유명한 일본 만화 '심야식당' 속 가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쓸쓸한 이들끼리 만나 서로 부대끼며 보듬고 웃고 즐기던 만화 속 그 가게처럼 작고 정겨운 곳이다. 점포가 좁아 일행으로 최대 3명만 입장할 수 있게 제한을 둔 점도 나 홀로족(族)에겐 반가운 일이다. 일본식 소바(면)에 돼지고기와 야채, 계란을 결들인 아부라소바(비빔면)가 대표 메뉴. 고기 한 점 얹은 면을 후루룩 들이켜고 정종 한 잔을 털어넣는다. 얼어붙은 몸이 서서히 녹는다. 술이 술술 들어가며 마음이 덥혀지면 사람이 그립기 시작한다. 소설가 은희경의 문구가 떠오른다.

'내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의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 달 만에 결혼한 애가 있다.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는 함께 식사하는 일의 중요함을 깨닫기 위해 가끔 혼자 먹고 마실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가게를 나오자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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