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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파리, 러시아 이르쿠츠크

05/08/2018 | 01:01:02PM
시베리아의 파리, 러시아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도시, 이르쿠츠크. 이름조차 낯선 이 도시는 어쩌다가 이런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일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멋과 낭만의 도시 파리와 사계절 내내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일 것 같은 시베리아는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봄이 시작되면 역사가 살아 있는 낡고 오래된 도시, 이르쿠츠크의 낭만도 생명을 얻는다.

시베리아의 봄은 천천히 찾아온다. 4월이 되어서야 겨우내 꽁꽁 얼었던 도시를 녹이고, 6월부터 시작된 뜨겁고 건조한 여름이 8월까지 이어진다. 이 짧고 굵은 봄여름 동안에는 모든 자연이 생동한다. 다시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까지 살아낼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햇볕을 흡수하고, 활동을 하고, 꽃을 피우고, 더욱 번성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 시기의 시베리아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피어 오르는 대지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실패한 혁명의 꿈과 숭고한 사랑,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이르쿠츠크가 낭만의 도시 ‘파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비밀은 바로 데카브리스트 혁명을 주도한 트루베츠코이와 볼콘스키의 저택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두 집은 얼핏 보면 주변의 집들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나무 대문을 삐걱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느 귀족 저택 못지않게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것을 볼 수 있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러시아 귀족 청년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적전지인 파리에서 경험한 유럽 사회에는 자유주의 사상이 널리 퍼진 반면, 조국 러시아에서는 농노제와 전제 정치로 인해 농민들의 실상이 여전히 비참했다. 그들은 비밀 결사대를 조직해 위로부터의 혁명을 꿈꾼다. 마침내 1825년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충성 선서식이 예정된 날 농노제와 전제 정치의 폐지를 외치며 봉기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러시아어로는 ‘데카브리’라고 하는 ‘12월’에 반란을 일으킨 이들을 일컬어 ‘데카브리스트’라 한다. 주동자 5명은 바로 교수형에 처해졌고 가담한 청년 장교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많은 러시아 문인들이 그들의 신념에 탄복해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푸시킨은 여러 편의 시를 헌정했다. 전제 정치에서 벗어나 농민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한 데카브리스트들의 열망은 동시대인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저 멀리 시베리아의 척박한 땅에도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그들의 다방면으로 높은 식견은 지역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데카브리스트 부인의 동상

트루베츠코이의 저택에 들어서면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배경과 시베리아로의 험난한 여정, 노역 생활의 고난 등을 엿볼 수 있다. 당시 황제는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에게 귀족 신분을 유지하고 재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트루베츠코이의 부인 예카테리나를 선두로 총 11명의 부인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행을 선택했다. 먼 길을 오고 갔던 편지와 당시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목숨을 건 사랑과 희생, 귀족이라는 신분을 무색하게 만든 숭고한 발걸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예카테리나는 이 도시에서 생을 마감해 3명의 아이들과 함께 도시 북쪽 안가라 강가에 위치한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잠들어 있다.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볼콘스키의 실제 모델인 데카브리스트 볼콘스키(러시아어로는 실제와 소설 속 이름의 첫 자음이 ‘V’와 ‘B’로 차이가 있다)도 시베리아에서 노역 생활을 마치고 이르쿠츠크에 정착했다.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느껴지는 볼콘스키의 집 내부에는 당시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응접실은 무도회와 콘서트, 문학의 밤, 음악회 등 사교 모임이 열려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 부인 마리야는 한구석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손님들을 위해 좋아하는 곡을 즐겨 치곤 했다.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감미로운 선율이 들려오며 차디찬 시베리아의 긴 밤을 따뜻하게 밝히던 이 집으로 초대를 받은 상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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