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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메이크업아티스트 김승원

05/30/2013 | 12:00:00AM
인터내셔널 메이크업아티스트 김승원
“내가 진짜로 잘할 수 있는 게 뭐지?”

20대의 끝자락에서 불현듯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대답할 길이 없었다. 축산계열 학과를 나와 화학회사 직원으로 착실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좀 더 뜨거운 삶을 원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던 기억의 필름이 멈춘 곳은 초등학교 교실. 정신없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때도 미술시간을 유난히 좋아하던 나였다. 예술적 감각을 살리되 흔하지 않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인생이 내 앞에 펼쳐졌다. 화장품 브랜드 ‘디올’에 입사해 ‘아시아 최초 인터내셔널 메이크업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각국을 오가며 일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날마다 예뻐지는 셀프메이크업》과 《하모니메이크업》이 있다.

오전 7시 30분,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한 후 출근준비를 시작한다.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이다. 나는 로션 바르기도 귀찮아하는 남자였다.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일하면서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화장대에 앉는다. 왼편에 놓인 스킨부터 에센스, 로션까지 차례로 발라 두드리며 흡수시킨다. 자외선차단제와 파운데이션까지 얇게 펴 바르고 나면 메이크업이 완성된다. 손톱을 가지런히 깎고 다듬는 일도 잊지 않는다. 메이크업아티스트에게 손은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부위다. 손끝에서 정교한 메이크업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손톱정리 후 핸드크림을 발라두면 하루 종일 촉촉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오전 9시, 사무실로 향한다. 프리랜서로 생활한 지 3년째이지만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가는 길은 여전히 어색하다. 인터내셔널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일하던 때, 나의 출근지는 한마디로 ‘버라이어티’했다. 어떤 날은 방콕, 또 어떤 날은 파리로 출근하는 식이었다. 요즘도 2~3개월에 한 번씩 해외출장을 가지만, 업무는 대개 사무실에서 시작된다. 달력에 표시해둔 일정을 확인하고, 메이크업 제품과 도구를 챙긴 뒤 사무실을 나선다. 오전 11시, 차로 30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대학 캠퍼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이크업 강연이 있기 때문이다. 강연장소로 가는 도중, 나를 알아본 학생들이 속속 모여든다. 몇몇 학생은 사인을 부탁하기도 한다. 몇 해 전부터 방송출연이 잦아지면서 생긴 변화다. 특히 뷰티전문 프로그램인 〈겟잇뷰티〉에 출연하면서 젊은 여성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쑥스럽지만 감사한 일이다. 강연장을 가득 채운 학생들은 대부분 여학생이지만, 요즘 들어 남학생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강연주제는 ‘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셀프 메이크업’이다. 셀프 메이크업은 방송과 강연에서 내가 즐겨 이야기하는 주제다. 메이크업을 대신해주는 메이크업아티스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메이크업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메이크업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메이크업을 한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메이크업을 통해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주제가 셀프 메이크업인 만큼, 모델을 따로 두지 않는다. 작은 손거울을 들고 내 얼굴에 직접 화장을 해 보인다. 브러시나 퍼프와 같은 화장도구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손가락의 터치만으로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완성하는 ‘손가락 메이크업’은 독학을 통해 익힌 나만의 메이크업 비법이다. 15년 전,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첫발을 내디딘 내게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내 허벅지에 아이브로로 눈썹 그리는 연습을 하고, 눈두덩에 아이섀도를 덧발라가며 나만의 메이크업 노하우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도구 대신 손가락으로 메이크업을 한 이유도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메이크업 방법을 개발하게 됐다. 학생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파우치를 뒤적이며 메이크업을 따라하기 바쁘다. 강연장을 돌며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원하는 학생에게는 직접 메이크업을 해 주기도 한다. 오후 1시, 패션화보 촬영이 있는 스튜디오에 미리 도착해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눈다. 화보 콘셉트에 대해 자세히 듣고, 메이크업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다. 대화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를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다. 사람은 원하는 이미지를 말로 표현한다. ‘청순, 도도, 섹시, 우아’와 같은 말은 각기 다른 이미지를 대표한다. 메이크업아티스트는 언어가 풍기는 이미지를 선과 색으로 구현해낸다. 대기실 화장대에 메이크업 제품과 도구를 정렬해놓고, 모델의 의상과 생김새를 살핀다. 여기에 색채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요즘의 메이크업 트렌드를 조합하면 한 편의 영상처럼 메이크업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내면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손놀림은 머릿속 생각보다 빨라지고, 가끔은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메이크업이 완성되고 나서도 쉴 틈이 없다. 다음 메이크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을 지키며 메이크업을 한다. 오후 7시 30분, 스튜디오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학교에 간다. 2008년부터 3년간 중앙대 패션예술학과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작년부터는 같은 대학원 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있다. 메이크업은 단순히 감각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리한 감각도 탄탄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빛을 발한다. 트렌드는 돌고 돈다. 트렌드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모르면 현재의 트렌드를 읽을 수 없고, 앞으로의 트렌드도 예측하기 어렵다. 색채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야 한다. 색채별 특성과 색채 간의 조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메이크업을 할 경우, 자칫 밋밋하거나 촌스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강단에 서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와 책상에 앉아 배울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억해둘 부분을 꼼꼼히 받아 적는다.

오후 10시, 집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뛰어나와 반긴다. 함께하는 시간이 적지만, 유난히 아빠를 따르는 아이들은 요즘 내게 가장 큰 기쁨이다. 잠시나마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다 두 아이가 잠자리에 들면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켠다. 최근에 재미를 붙인 SNS는 새로운 소통의 장이다. 메이크업과 관련된 궁금증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메이크업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메이크업에 관한 이슈를 점검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제품을 이용한 표현방식도 다양해진다. 메이크업은 옷차림, 헤어스타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므로 패션이나 헤어에 관한 이슈도 놓치지 않고 찾아본다. 패션잡지를 책상 위에 쌓아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뒤적이기도 한다.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며칠 전 새로 나온 아이라이너 때문이다. 발색은 어떤지, 발림성은 좋은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다 화장대로 간다. 포장을 뜯어 손등에, 눈에 그려본다. 새벽 1시 30분, 아이라이너 위에 아이섀도를 덧칠하고, 아이섀도에 맞는 립스틱을 바르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온다. 그제야 화장품을 정리하고, 화장을 지우기 시작한다. 마무리 스킨케어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고객들이 메이크업을 받고 나서 늘 하는 말이 있다. “내 얼굴이 환해진 것 같아요.” 왜 그런 걸까? 눈이 조금 더 커 보이고, 코가 조금 더 높아 보여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거울을 볼 때, 그늘져 있던 고객들의 표정이 구김살 없이 펴진다. 환하게 웃을 준비가 된 것이다. 행복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찾아온다. 고객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이 오늘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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