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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 닳은 이야기도 허진호가 만들면..'위험하다'

10/09/2012 | 10:14:53AM
닳고 닳은 이야기도 허진호가 만들면..'위험하다'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전반부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다. 갈라 프리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된 이 영화는 주연배우 장동건과 허진호 감독 뿐 아니라 중국 최고 여배우들인 장백지와 장쯔이가 내한, 각종 행사에 참석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위험한 관계'는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사교계의 여왕 모지에위(장백지 분)와 당대 최고의 플레이보이 셰이판(장동건 분)이 정숙한 미망인 뚜펀위(장쯔이 분)를 두고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치명적인 삼각관계를 다룬 작품. 이미 '발몽', '위험한 관계',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여러 시대에 거쳐 국내외 감독들에게 수차례 영화화된 작품이다. 하지만 닳고 닳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고전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장동건은 '신사의 품격'은 예고편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옴므 파탈의 매력을 한껏 선보인다. 허진호 감독은 "장동건이 이제까지 자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재미있어 한다. 본인은 자기의 그런 모습에 호감적인 부분을 느껴끼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새롭게 믹싱한 영화에서 장동건은 직접 중국어로 더빙을 했는데, 그 언어가 굉장히 완벽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어까지 섭렵한 이런 장동건의 모습에 허 감독은 "상식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엄마가 자식이 차에 깔렸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중국어는 사성이 어렵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다 소화해냈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감탄했다.

여기에 글로벌 톱스타 장쯔이, 장백지의 캐스팅이라니 말그대로, 아니 말도 안 되는 캐스팅이다. 하지만 그간 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한석규, 심은하, 이영애, 유지태, 배용준, 손예진, 정우성, 고원원, 황정민, 임수정 등 국내외 톱스타들과 작업해 온 허진호 감독이다. 섬세한 감성을 담은 그의 연출력 때문에 허 감독은 배우들이 꼭 한 번 작업하고 싶은 감독으로 손꼽힌다.

항상 톱스타들과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쉽게 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감독과 배우, 둘 다 인연이 돼야하는 것 같다. 감독으로서는 항상 선택받는 입장이니까"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 영화는 장쯔이와 장백지의 이른바 '크로스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간 '와호장룡' 등 주로 강인한 인상을 선보였던 장쯔이가 진정한 사랑을 믿는 사랑스럽고 연약한 여자로, 장백지가 중국 사교계를 쥐고 흔드는 팜므 파탈로 등장한다.

이에 허진호 감독은 "장쯔이를 먼저 캐스팅을 하고, 장백지를 다음에 했는데 처음에는 걱정을 했다. 1988년작 '위험한 관계'의 존 말코비치와 글렌 클로즈처럼 원래는 여자가 나이가 좀 많다. 장백지 같은 이 젊은 배우가 과연 이런 강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만나서 얘기하다보니 모지웨이와 자기가 많은 공통점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상해에서 촬영 준비를 하던 허진호 감독이 장백지를 캐스팅한 비화는 유명하다. 장백지가 주변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6시간 정도를 달려가 새벽 4시쯤 장백지를 만났다. 당시 민낯이던 장백지의 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얘기를 했다고. 허 감독은 "장백지가 자신의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하면서 모지에위가 자기와 닮은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 '파이란' 때를 기억하면 그늘도 보이는데, 그녀의 삶에 대한 통찰력도 엿보였다. 그녀가 모지에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장쯔이 역시 그간 강인하고 셌던 캐릭터들과는 다른, 정숙한 미망인으로의 변신을 달가워했다. 주인공 세 배우 모두에게 파격적이고 신선한 도전이었다.

캐스팅도 캐스팅이지만, 이 영화가 가장 관심을 끄는 이유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멜로 영화의 거장' 허 감독을 두고 주로 하는 말이다. 그간 허 감독의 영화에는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그 캐릭터들의 감정선이 단순하지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원작 '위험한 관계'와도 맞물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허 감독 역시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동의하며 "장쯔이가 한국 감독이 먼저 영화화 한 '스캔들'이 있는데 그것을 또 한 번 리메이크하는 것에 '용기'있다고 하더라"며 "원작 소설의 심리묘사들은 지금 읽어도 연애에 대해 배우는 생각이 든다. 장동건 씨도 이 책을 예전에 읽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연애를 좀 더 잘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더라. 그 만큼 그 소설은 당시 연애 교과서였는데, 원래 작가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화려하고 퇴폐적이고 사랑을 갖고 게임을 하던 그런 쾌락적인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그 부분이 상하이의 1930년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해볼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감독들이 이 이야기를 계속 영화로 만들구나, 란 생각을 했다"라고 '위험한 관계'를 30년대 중국과 결합시킨 파격적인 배경에 대해 들려줬다.

주인공들이 자기 자신과 사랑을 갖고 나누는 복합적인 감정들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배경, 의상과 어우러져 한 편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위험한 관계'는 이미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지만, 상하이 최고 부자들의 사랑 게임은 예전의 것을 답습하지 않은 새로운 느낌을 안겨준다.

확실히 '위험한 관계'는 화려하고 커진 스케일을 비롯해 허진호 감독이 이제까지 다뤘던 영화들보다는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세고 심리 묘사가 강렬하다. '절제의 미학'이 돋보였던 허 감독 영화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허 감독에게 이 영화가 감독 인생의 새 전환점이 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예전에 작업했던 영화들과 찍는 방식과는 달랐을 뿐 아니라 시대극이고 미술적이다. 이런 영화를 해 봤다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허 감독은 배우들이 마음껏 연기를 펼쳐놓을 수 있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한 신 한 신을 완성시킨다. 허 감독은 "세밀하게 자기가 디렉팅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 같은 경우는 연기에 답을 갖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런 건 아니다. 배우는 그 역이 돼서 연기를 할 때 자기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럼으로써 그 역할과 자기가 대화하게 되고 그 역에 가까이 가게 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연기를 하게 한다. 연기할 수 있는 상황을 주고 그 상황 속에서 '알아서 하세요' 이런다. 그러면서 거슬리는 부분을 얘기해주고 조율해나가는 방식이다"라고 자신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허진호 감독을 떠올리면 한국 멜로 영화의 이정표를 제시한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위험한 관계'로 본인의 대표작이 바뀔 것 같냐는 질문에는 "감독은 누구나 자신의 최신작을 기억하게 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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