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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모자관계 '케빈에 대하여'

07/24/2012 | 10:57:42AM
악몽의 모자관계 '케빈에 대하여'
애정없이 그저 "엄마가 익숙해서" 엄마라고 부르는 아들에 대해 엄마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가까워야 할 모자지간을 채우는 건 애정이 아니라 아득한 거리감뿐이라면 당사자들이 느끼는 절망과 안타까움은 어떨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원제: We need to talk about Kevin)는 뒤틀린 모자관계, 아니 헝클어진 인간관계에 대하여 섬세하게 풀어낸 시적인 영화다.

촉망받던 여행가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에바(틸다 스윈턴). 원치 않던 임신 끝에 아들 케빈(이즈라 밀러)을 낳는다.

행복했던 그녀의 삶은 아들의 출생과 함께 불행으로 도색된다. 사람 가려가며 집요하게 엄마의 신경을 건드리는 케빈 탓이다.

어느 날, 케빈이 다니는 학교에서 수십 명이 다쳤다는 TV 뉴스를 듣고 다급하게 학교로 찾아가는 에바. 그러나 끔찍한 소식만이 그녀를 기다릴 뿐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학교 친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2002)이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2003)와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엘리펀트' 등이 청소년기의 불안한 심리와 각종 차별과 같은 사회적인 접근으로 텍스트를 다루는 데 비해 '케빈을 위하여'는 인간의 본성과 모자 관계의 근원적인 불안감 등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부모로서 당연히 아들을 사랑하겠지만 정말 그가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그저 엄마이기 때문에 견딜 수밖에 없는 천형(天刑)을 극복해야 하는 에바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 시선은 현실 속에 과거가 포개지고, 실제 속에 환상이 틈입한다.

때로는 실제와 환상을 아우르는 경계가 흐릿해지기도 한다. 물이 들어찬 욕조에 담긴 케빈의 얼굴은 에바의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케빈과 이를 대속(代贖)해 나가야 할 에바는 한몸이면서 두 몸이라는 은유다.

문제작 '쥐잡이'로 데뷔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류 감독 린 램지의 섬세한 연출이 가슴을 후벼 판다. '쥐잡이'에서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어린아이의 감성을 시적으로 재현한 램지는 이번에도 '날카롭고' 서정적인 영상을 구현해냈다.

머리카락 끝을 채색한 핏빛 토마토소스, 부드럽게 너울대는 흰색 커튼과 그 커튼 뒤로 넘실대는 광기, 벽에 새겨진 피칠 갑을 벗겨 내는 에바의 대속 과정 등을 느리면서도 깊이 있는 시각으로 그려냈다.

영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틸다 스윈턴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미국식 악센트부터 눈빛과 동선까지, 차분한 목소리와 생명감 넘치는 표정으로 에바를 연기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즈라 밀러는 도대체 설명할 수 없는 케빈이라는 악마적인 인물을 괴기스러울 정도로 섬뜩하게 표현했다.

사실 일부 관객들에게 상영시간 112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듯하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처지에서 이 영화는 임신의 공포를 그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1968) 만큼이나 공포감을 안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담과 공포를 뚫고 "예전에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확신할 수 없다"는 케빈의 대사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불편함으로 점철된 이 영화는 가슴 언저리를 뻐근하게 해 주는 뜻밖에 울림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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