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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영화가 인생이었고 인생이 영화였다

11/06/2018 | 12:00:00AM
신성일, 영화가 인생이었고 인생이 영화였다
그는 강동원이었고 송중기였고 박보검이었다. 1960~1970년대 뭇 여성을 사랑에 빠뜨렸던 '원조 꽃미남' 신성일(81·본명 강신영)이 4일 오전 2시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지 1년 5개월 만이다. 아내 엄앵란(82)씨는 "남편이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수고했고, 고마웠다. 미안했다'였다"고 했다. 영화 대사처럼 짧지만 묵직한 세 마디였다. 엄씨는 "떠나는 순간까지 그는 천생 배우였다. 하늘에서도 영화처럼 살 것"이라고도 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신씨는 1959년 고(故) 신상옥 감독이 운영한 영화사 '신필림'의 신인 배우 모집 현장에 우연히 갔다가 264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전속배우로 발탁됐다. 이때 신상옥 감독에게 얻은 예명이 '넘버원 스타'라는 뜻의 신성일(申星一)이었다.

이후 줄곧 이름처럼 살았다. 1960년 영화 '로맨스빠빠'로 데뷔해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을 찍으며 한국 영화 최고의 주연 배우로 떠올랐다. 매끈한 외모에 근육질 몸매. 그의 등장은 한국 영화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전까지 역사물이 대세였지만 신성일 이후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청춘물 또는 캠퍼스물이 주류를 이뤘다. 꽃미남 열풍은 이때부터 싹텄다.

열광은 기록을 낳았다. 주연(主演)을 맡은 횟수만 507회에 이른다. 광복 이래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평생 출연한 영화는 524편. 전성기 시절엔 한 해 65편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는 꺾이지 않는 노년의 상징처럼 보였다. '별들의 고향'을 찍은 이장호 감독은 "최근까지도 새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떠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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