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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3대 캐년 산행 후기- 휘영청 보름달 아래, 브라이스의 야간산행

07/09/2018 | 06:30:29PM
미 서부 3대 캐년 산행 후기- 휘영청 보름달 아래, 브라이스의 야간산행
Photo Credit: pickupimage.com
브라이스 캐년은 시즌동안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수백명이 모여들어 퀸스 가든과 나바호 트레일 야간산행을 할 수 있도록 산행로를 개방합니다. 푸른 달빛에 비치는 후두들의 모습들이 낮에 보던 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을씨년스런 길들이 긴장의 숨결을 낮게 하고 트레일을 걷는 동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특이한 감흥이 이는 길입니다. 이름하여 Bryce Canyon Fullmoon Special Night Trekking입니다. 휘영청 보름달이 중천에 걸려있을 때 그 은은하고 교교한 달빛을 받아 기묘한 첨탑들이 그윽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그 색다른 아름다움의 경험은 분명 사뭇 다른 저 피안의 세상을 접하는 듯합니다. 대개가 그렇듯이 야간 산행은 낮 시간에 한번 다니면서 지형을 숙지하고 밤에 재차 그 길을 걷는데 아무래도 빛이 부족한 상태에서 안전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한번 본 기억을 더듬어 돌아보는 묘미를 주기 위함입니다.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진 조화미의 절정

랏지에서 주섬주섬 요리한 물냉면을 기대 이상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캐년으로 향합니다. 이 미지의 이국땅에서 한식을 그것도 냉면같은 특별식을 먹을 수 있음도 뜻이 맞는 동무들이 동행한 길이기에 가능하고 또한 한없는 축복이라 여기며 흡족해합니다. 땅거미가 살금살금 내리는 시간. 브라이스에 당도하였습니다. 강렬한 석양빛을 받은 첨탑들이 오묘한 색으로 불타는 듯 보입니다. 넓은 석기둥 바다를 바라보며 진한 감동이 가슴에 이는 것을 느낍니다. 저 아름다운 노을 속으로 저 수려한 돌기둥 밭 사이로 걸으려 하니 이름 지을 수 없는 야릇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해져옵니다. 이미 찬란한 아침을 기다리며 여명이 드는 새벽처럼 주위가 마지막으로 한순간 밝아지는 것 같이 여겨질 때 일행은 트레일 헤드의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트레킹 폴을 높이 들어 파이팅을 외칩니다. 부지런히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 이윽고 바위굴을 지나면서 퀸스 가든에 이르렀을 때는 어둠이 짙게 내리고 온전히 달빛에 의존하여 걸어야만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조명을 준비합니다. 손에는 랜턴을 들고 이마에는 헤드램프를 쓰고 띠를 조정하고 내 앞길을 비출 투시 방향을 맞춥니다. 갱내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중천으로 애써 오르려는 달이 옅은 구름 속으로 오가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더 넓은 후두 바다에 우리들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이 고요하기만 한데 어디선가 군데군데서 인기척이 들리며 불빛들이 살아납니다. 브라이스 캐년의 야간산행을 즐기는 이들 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캐년 안에는 빛의 군무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줄지어진 빛들이 아름다운 띠를 만들어 길 따라 휘어지면서 묘한 작품을 연출해냅니다.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진 조화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여행이란 휴지처럼 구겨진 내 삶을 다시 펴보는 작업

어둠은 더욱 짙게 내리고 길은 어느 듯 나바호 트레일로 들어섰습니다. 좁은 협곡을 지나며 그 유명한 거대 전나무 곁에서 흔적을 남기려 기념촬영을 합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남기는 이 소중한 순간에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아쉬워합니다. 일류 사진작가였다면 이 특이한 풍광을 잘 담아 둘텐데.. 이내 차단된 공간임을 감지할 수 있는 서늘한 기류가 불어옵니다. 하늘을 쳐다봐도 그 총총하던 별들도 보이지 않고 달은 그 넓은 하늘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등 빛의 밝기가 갑자기 더 환해진 것 같은 착각이 이는데 길은 고갯길로 이어집니다. 가파른 기백미터 길은 한땀 한땀 휘어져 있어 고단한 나그네 길을 배려하여 만들어 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서두를 것 없는 여유로운 삶의 한 순간. 이 여백의 자족을 한껏 즐기려 합니다. 숨이 차오르면 쉬었다 가고 힘이 들면 멈추어 수다로 풀어줍니다. 여행은 이처럼 우리를 한없이 여유롭고 느슨하게 해줍니다. 여행이란 고단한 인생 여정을 잠시 젖혀두고 길을 나서 발길 따라 혹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흘러가면서 휴지처럼 구겨진 내 삶을 다시 펴보는 작업입니다. 한껏 구겨져 어떻게 정신없이 살아왔는지 모를 기나긴 여정을 되돌아보는 귀한 시간입니다. 비슷한 나이를 먹은 상대로부터 나를 견주어 보기도 합니다. 먼 동부에서 이곳 까지 더 머나먼 한국에서 이 브라이스 캐년 까지 달려와 이 낯설고 물선 이국땅 외로운 하늘아래서 유년의 시절부터 지금의 나이 까지 같은 추억을 공유했던 동년배들이, 더구나 눈빛만 봐도 무엇을 말하는지 훤히 아는 산을 사랑하는 동무들이 어께를 나란히 가고 가는 이길. 우리는 이날 그 길을 마음으로 이야기하며 걸으면서 그렇게 행복하였습니다.

별빛에 흔들리는 또 다른 브라이스의 밤 풍경

정상에 다시 올라 창해처럼 펼쳐진 바위기둥들을 조망합니다. 한쪽면만 비껴서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은 첨탑들이 더욱 성스러운 모습으로 기억 속에 각인되는 순간입니다. 낮에 가슴에 담아두었던 풍광을 떠올리며 어둠속 달빛에 젖어있고 별빛에 흔들리는 또 다른 브라이스의 밤 풍경을 의식적으로 기억 속에 오래 두기 위하여 재구성해둡니다. 점점이 찢어진 구름들이 흐트러져 있는 맑디맑아서 더욱 가까워진 브라이스의 하늘엔 유난히도 더 밝게 빛을 발하는 수많은 별들이 더욱 요란하게 반짝거립니다. 아득히 먼 계곡마다 간간히 이어지는 불빛 행렬이 인디언의 성지를 이리저리 돌아가니 밤의 브라이스는 한껏 경건해지기조차 합니다. 언제 다시 올수 있을까하는 아쉬움에 그 애틋함을 담아 한잔 곡차를 정상주로 서로 나눕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축복의 은총을 마음에 담고 서로 무사고의 전도를 기원하는 잔을 기울이며 깊어가는 산동무들과의 밤은 술과 함께 익어갑니다.

브라이스의 밤은 통기타의 애잔한 음률과 함께 익어가고

랏지로 돌아가는 아쉬운 밤길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먼 길을 떠나는 심정입니다. 둥근달은 서녘에 떠서 가는 길을 만류하는 듯 더욱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한동안은 아무도 또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조용한 음악만 차안을 흐르고.. 랏지에 도착하였습니다만 아무도 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깊은 감흥이 쉽사리 걷혀지지 않는 긴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이 인간의 정리인 것을 왜 이다지 미련의 자락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운 명경을 보고 돌아설 때면 꼭 이런 이별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 별리의 아픔이 더한 것은 다시는 보러 오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통기타의 애잔한 선율을 타고 흐르고 세시봉 시대의 명곡들이 계속 가슴을 적셔옵니다. 트윈폴리오의 가슴 저린 화음, 송창식의 애절한 노래들이 이어지면서 함께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일행 중 한 여인이 북받치는 감흥에 왈칵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러자 누구랄 것도 없이 도미노처럼 번져서 차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어버립니다.

어색하지만 너무나 숙연한 분위기에 남정네들은 서로 바라보며 계면쩍은 웃음만 지우고 있다가 어느새 무의식중에 그들의 흐느끼는 어께를 어루만져주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말아버립니다. 50이란 초로의 나이에 염색으로 감춰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인 흰머리들이 귀밑머리부터 물들어가는 그 허망함과 무상함에 가슴이 젖어오고 그래도 이 나이에 사랑하는 동무들과 이 순간 이 자리에 함께 있음이 너무도 행복하여 흘리는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가 함께 섞인 눈물이라 하였습니다. 통기타의 귀에 익은 애절한 음색이 아직도 여전히 흘러나오고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갑니다. 어느새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달님도 우리와 눈이 미주치자 멋쩍은 듯 얼른 구름 뒤로 얼굴을 숨깁니다. 그렇게 그렇게 브라이스 캐년의 밤은 7080 세대의 사랑노래와 함께 그윽하게 익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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