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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팔레치안 트레일 셰난도어구간 종주기 #1

07/09/2018 | 06:23:31PM
에팔레치안 트레일 셰난도어구간 종주기 #1
Photo Credit: pickupimage.com
엘리컷 시티에서 출발한 우리의 애마는 이곳저곳 들러 참가자들을 태우고 66번 도로 웨스트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 아침안개 속에서 느긋하게 깊은 잠을 즐기던 농가들이 이제야 깨어나는 한적한 29번 도로를 따라 남하합니다. 분주하게 삶의 터전으로 달려가는 출근길의 긴 차량 행렬과 역주행하는 우리의 자연으로의 귀환을 견주어보며 나름 삶의 희열같은 자부심이 가슴 한 언저리에서 일어납니다. 더구나 세 시간을 꼬박 달려야 도달하는 이 기나긴 거리를 걸어서 종주하게 되는 자신의 대견함을 상상하며 저 멀리 끝없이 그려진 셰난도어 산군의 능선을 바라보며 즐겁게 달립니다. 산악인 엄홍길의 “8천 미터 고봉의 희망과 좌절”이라는 오디오 북을 들으며 그 분연한 의지를 불사르고 죤 덴버의 불후의 명곡 "Take me home country road"라는 노래속의 자연 배경을 눈앞에 펼쳐짐을 확인하며 콧노래로 흥겹게 따라 부릅니다. 차는 소읍 샤롯데스빌을 지나며 64번 서향 길로 들어서 스무마장을 달려 고개턱을 넘으니 에팔레치안 산맥줄기를 이은 하늘 길의 연장인 블루릿지 파크웨이와 나누어지는 셰난도어 남쪽 입구에 다다릅니다. 남단 조지아주 스프링어 마운틴에서부터 시작하여 미 최북단의 메인주 캐터딘 마운틴까지 2175마일 이어지는 에팔레치안 트레일. 가로 2인치 세로 6인치 길이의 흰색 표시로 상징되는 이 장대한 길은 동부의 14개주에 걸쳐 8개의 국유림과 3개의 국립공원, 60여개의 주립공원을 통과하는데 조지아 애틀란타의 한 변호사인 벤톤 맥케이(Benton Mackaye)가 1921년 제안하여 통과하는 지역마다 열렬한 호응을 얻어 수많은 봉사자들이 참여한바 16년만인 1937년 완성이 됩니다. 1,500미터 이상의 봉우리만 350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종주 기간만 최소 5,6개월이 소요되는 대역사며 멀고 긴 길입니다. 그 중 한구간인 셰난도어 국립공원내의 에팔레치안 트레일 101마일. 107마일 길이의 스카이라인과 실타래처럼 얽혀 셰난도어 산군을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길을 종주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는데 고도 1900피트인 Rockfish Gap에서 101마일 대장정이 시작됩니다.

어느새 가을빛이 살포시 내려앉아

신작로 곁에 눈에 띄기조차 어려운 갓길을 들어서 산행은 시작되고 오늘은 어떤 코스가 우리를 즐겁게 하고 때론 우리를 시험할 것인가 하는 여러 사념에 젖어 빽빽하게 나뭇잎으로 가려진 하늘을 쳐다봅니다. 초가을 날씨처럼 숲속의 공기는 쾌적하기 이를 데 없어 온몸의 기공을 열어서 수목들이 품어내는 천연산소를 받아들이는데 여린 잎들을 흔들고 지나가는 미풍에는 자연의 향내가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어느새 가을빛이 살포시 내려앉은 나무 가지 끝에는 올망졸망한 잎새들이 수줍은 연황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길섶에는 강아지풀이며 곰취들이 가득 군거하며 분주한 우리들의 발걸음을 맞이하고 또 보냅니다. 호젓한 길에 사람들의 발길이 무척이나 반가운 듯 흔들리는 몸동작이 가볍습니다. 간혹 그 틈에 섞여 조그만 얼굴로 하늘거리는 들꽃들이 앙증스럽게 애틋한 인사를 합니다. 자연과 일부가 되어 걷는 길. 참으로 기쁜 일이며 충만한 생의 자족을 느낍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초반 300미터를 쉬지 않고 열심히 올라갑니다. 혼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길. 우리라는 공동체가 함께 하기에 덜 힘들고 지루함과 노곤함을 나눌 수 있는 길이니 공존과 상생의 길입니다. 3마일 지점인 McCormick Gap을 지나 무념의 상태에서 비탈길을 열심히 오르는데 어느 한분이 산삼의 향기가 난다더니 이내 빠알간 열매가 맺힌 다섯 잎의 산삼하나를 발견해냅니다. 심봤다고 소리치는 옆 사람의 외침에 주변인들이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깊숙이 박혀있는 산삼을 트레킹 폴로 휘저어 파내보니 제법 굵은 몸통을 십년이상 땅속에 숨겨온 물건이었습니다. 운수대통, 로또당첨 등의 온갖 치사가 쏟아지고 한입 얻어먹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심리로 아부성 멘트도 끼어듭니다. 즉석 시식은 지양하고 다음 산행에 은근하게 우려낸 산삼차를 기대하기로 합니다. 시작이 상서롭다는 생각에 미치면서 2769피트의 Scott Mt.를 차오르는 발길이 가볍기만 합니다. 5마일 지점의 Beagle Gap도 쉽게 넘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들을 품고 산으로

종주에 함께 한 이들의 구성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팔순을 이태 남겨놓은 분, 삼십년만에 산행을 하게 되었다는 분, 남편이 입버릇처럼 셰난도어를 종주하자고 말하더니 부재중이라 혼자 참가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분, 주말산행에 빠지지 않고 다니지만 종주의 기회는 없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고 기뻐하는 분, 마침내 병석에 누운 아내의 간절한 소망으로 건강을 위해 처녀산행을 한다는 분, 저마다의 인생만큼 다양한 사연들을 품고 산을 찾았습니다. 그런 아픔과 기다림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산은 여러 가지 형태로 화답을 해줍니다. 노목과 기암들이 도열한 셰난도어의 한 비탈길을 묵묵히 올라 다다른 산정 드넓은 곳에는 노란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목초지(Meadow)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제주의 유채밭을 연상케하는 노란 꽃들이 마구 들판을 달리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합니다. 나잡아 봐라하는 낯간지러운 유치함도 용서될 것 같은 풍광입니다. 어느새 중천에 머무르는 태양이 밝은 빛을 쏟으니 삼라만상이 생기롭게 빛나고 한줄기 지나가는 바람에는 훈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열리고 혼탁한 심사가 깨끗하게 씻기어져 버립니다. 자연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조연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암수 정다운 사슴들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청명한 기후에 나들이를 나섰고 보기 쉽지 않은 야생 칠면조들도 짝을 지어 돌아다닙니다. 야성을 잃은 듯 우리들의 접근에도 별 경계심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제 갈 길을 서두르지 않고 갑니다. 참 여유롭다는 부러움이 입니다. 자연이 선사하는 이 평화로운 그림 속에 우리가 한때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은 산행이었습니다.

마음의 배낭을 털어 버리고

7마일 지점인 Jerman Gap을 지나 와인으로 정상주 한잔씩 순배하고 처녀등산이 마음과 달리 몸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이들과 이날따라 개운치 않은 컨디션을 토로하는 이들 네 명을 차량으로 먼저 보내고 나머지 일행들이 줄을 지어 3마일 구간을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마지막 피치를 올립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Sawmill Run 전망대 까지 힘든 구간의 대명사 깔딱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1천 미터도 못 미치는 고도이건만 셰난도어의 산정에는 고산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 현상이 나타나는 특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사목들이 가득 채워진 정상은 태초의 원시를 그대로 보여주고 켜켜이 쌓인 이끼와 공생하는 기암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가을이 먼저내린 산정에는 지난 혹독한 가뭄에 엽록소의 변화로 이른 단풍이 곳곳에 익어있고 태풍 아이린이 핥고 간 자리에는 무성한 낙엽들이 깊은 가을처럼 쌓여있습니다. 계절을 넘는 이 순간에 잠시 세월의 허망함을 느끼는데 앞서 걷는 7순의 넋두리가 귓전에 다가옵니다. 인생은 삐거덕 거리고 몸은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데 이놈의 세월은 한번도 고장 날 줄을 몰라. 자신의 연배만큼 빠른 시속으로 세월은 흘러간다는 아쉬움도 덧붙입니다. 견줄 수 없는 짧은 인생으로 그래도 들은 풍월 하나 있어 살아있는 동안 오늘이 님에게는 가장 젊은 날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저런 허접한 인생사로 가파른 길을 쉬어가면 오르니 출발 5시간 만에 Sawmill Run에 올랐습니다. 정상이 주는 선물. 아득한 산아래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몰아쉽니다. 더디게 가려하는 여름날의 햇살이 아무래도 그 열기만큼은 그때만 못합니다. 정상에 서서 세속의 모든 잡다한 번뇌를 쏟아버리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담게 될 삶의 앙금들을 위해 마음의 배낭을 털어 비우고 길을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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