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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3대 캐년 산행후기- 그랜드 캐년 인디언의 길. 카이밥 트레일

07/09/2018 | 05:30:46AM
미 서부 3대 캐년 산행후기- 그랜드 캐년 인디언의 길. 카이밥 트레일
Photo Credit: pickupimage.com
나른한 오수에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환청처럼 들리는 인디언의 말발굽 소리. 노새들의 행렬입니다. 콜로라도 강변 유일한 숙소인 팬텀 랜치(Phantom Ranch),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냥을 위해 머물렀다 해서 루즈벨트 렌치라고도 불려 지는데 음식이나 음료를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숙소를 운영하기 위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왕래하는 노새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애처롭도록 지쳐 보입니다. 시선을 떼지 않고 따라가자니 구름다리를 건너갑니다. 인디언의 땅, 바람의 땅에 준설된 저 구름다리는 과연 어떤 감흥을 줄까하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 강을 건넙니다. 1920년 경 인디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이 철제 다리. 자연보호를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던 인디언들이 수천 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그들의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상기하면서 괜스레 씁쓸한 동병상련의 애처로움이 동정처럼 일어납니다.

유장한 물은 그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아무런 말도 없이 유유히 흘러만 가고 피의 역사를 보아온 산증인인 바람도 모든 것을 용서라도 하려는 듯 오늘 평화스런 협곡을 부드럽게 보듬어 주고 지나갑니다. KAIBAB 트레일. 그랜드 캐년의 심장부를 가로 지르는 카이밥은 우스갯소리로 우리 한인들은 개밥이라고 쉽게 부르는데 이것은 인디언의 말로 ‘거꾸로 선 산’이라는 뜻이랍니다. 거대한 대 협곡이 마치 산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라 부르게 된 인디언들의 소박한 표현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원시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비의 땅. 그리고 거대한 인디언의 땅. 발길이 닿는 곳마다 거룩하고 신성한 거꾸로 서있는 산에 우리의 족적을 남기며 어쩌면 우리들의 조상일 것 같은 그 인디언들이 걷던 이 길을 오늘은 우리가 문명을 앞세워 걷고 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들추는 작업

다시 Inner Rim 트레일을 따라 돌아와 남쪽 카이밥 트레일로 들어섭니다. 강변은 항상 림보다 기온이 10여도 높아 오늘은 무척 무덥습니다. 6월부터는 40도가 넘는 사막기후로 변해 의지 약한 트레커들을 시험에 들게도 합니다. 물이 있고 바람이 있고 태양이 있어 기름진 곳. 길가에는 수천 년을 서로 의지하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평화롭게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집터며 광 터며 남겨진 흔적들이 어떻게 그들이 살아왔을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여름이 일찍 온 이곳에 봄꽃은 어느새 다 져버리고 밤이슬을 먹고 자라는 사막성 선인장들이 제철을 만나 요염한 꽃을 피워냅니다. 저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볼 때는 아무런 생명체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이 계곡에 풀이며 꽃이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수억 년 동안 강물이 깎아 만든 주변 절벽들이 황홀경을 선사합니다. 거대 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들추는 작업. 내려온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가장 문명의 나라 미국 내에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인 그랜드 캐년. 대자연의 신비와 웅장함이 살아 숨 쉬는 듯 수 억 만년 세월의 흔적이 켜켜히 쌓여 독특한 지층을 이루고 있어 지금도 계속되는 침식 작용에 그랜드 캐년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12개의 바위 층을 가진 그랜드 캐년은 협곡마다 변화무쌍한 지구의 형성 과정이 차곡차곡 세월과 함께 쌓여 지질학의 교과서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방문객 90퍼센트 이상이 전망대에서 그냥 휘 둘러보고 갑니다만 우리들처럼 이렇게 그 신성한 인디언의 길을 따라 온 자만이 이 신의 걸작품을 감상하고 품평할 기쁨을 누립니다.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신의 영역, 그 속살 깊은 곳으로

이제 다시 이어지는 7마일의 오르막 길. 사우스 림까지 1457미터의 급경사 길을 올라야하는 지난한 길입니다. 모두 하룻밤을 유하고 이틀 만에 종주하는 길이건만 무모하리만치 과감한 우리 들뫼바다 회원들은 자신감 넘치는 건각으로 하루 만에 해내는 새로운 기록을 세웁니다. 이 대단한 종주 길에 임상철, 김혜경 부부와 장윤정 회원이 동행했습니다만 물이 부족하여 수원지가 전혀 없는 사우스 케이밥 트레일 종주는 무리라 판단하고 더 많이 돌아가지만 물의 공급이 충분한 다시 왔던 12마일 브라이트 엔젤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정상에서 다시 만날 기약으로 서로의 갈 길을 떠납니다. Tip Off 구간 까지는 다소 완만하여 여유있게 오르며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협곡의 장관을 즐길수 있습니다.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신의 영역, 그 속살 깊은 곳으로 발을 내디딥니다. 그랜드 캐년의 진짜 숨은 매력은 이 가파른 길을 오르며 하늘을 가리는 직벽을 감상하고 전망이 훤하니 트이는 이 길에서 캐년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 할 일만도 아닙니다.

인생도 호사다마라 했습니다. 좋은 면이 있다면 그 이면에 나쁜 것도 있는 법. 강렬한 햇볕을 막아줄 그늘막이 없어 여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한증막처럼 더워진 육신에서 한 대야 빠져 나오는 신진대사의 찌꺼기들. 모든 것을 버리니 차라리 개운하고 홀가분해집니다. 수원지가 없다 보니 산객들의 발길이 적어 산길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간혹 산가마귀의 처량한 외침과 황량한 바람소리만이 마른하늘을 두드리고 지나갑니다. 누가 이 산 앞에서 자신 있다 당당하다 허풍을 떨 것인가? 산은 늘 우리에게 자세를 낮추고 겸허하게 임하라 가르칩니다. 거대한 산은 삼킬 듯이 버티어 있고 그 앞에서 힘겹게 오르는 우리는 너무도 초라하고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좌절할 수 없는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택한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넘어야 하는 이 순간 이 가혹한 형벌같은 도전을 견디게 하는 것은 서로의 다독이는 격려. 산에서 우리는 늘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거의 다 왔다고. 정상이 바로 저만치고 멀지 않다고..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입니다.

뒤돌아서는 순간 다시 보고파 질까봐 다시 또 한번

다시 Skeleton point를 지나고 Cedar Point에 이르는 숨가픈 구간. 직벽들의 틈바구니를 깎아 등성이를 연결한 산행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연결 되어있고 전율이 차라리 쾌감으로 느껴오는 가마득한 절벽 길을 스릴 넘치는 박진감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꺾어지는 고개 마루마다 쉬어가며 발아래 펼쳐지는 다시보기 힘들 비경을 보면서 지난한 고행의 길이 서러워 눈물마저 왈칵 쏟아버릴 뻔 했습니다. 바람이 덧없이 불어오고 땀에 젖은 육신을 털어줍니다. 한참을 넋 놓아 바라보다가 뒤돌아서는 순간 다시 보고파 질까봐 한번 또 되돌아보는 이 그랜드 캐년의 장대한 풍경. 그래도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 두려워 사진으로 열심히 남깁니다. 마지막 개인사정으로 참석치 못한 김광태 회원과 다른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이 명경을 보는 순간 문득 일어납니다. 그들은 얼마나 산을 그리고 있을까! 어떤 이유에서이든 산을 오르지 못하는 사람은 오르고 있는 사람보다 더욱 산을 그리며 삽니다. 만나지 못하는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내 어머님 같은 이가 더욱 애틋하게 그립듯이 산으로 갈수 없는 사람의 그리움은 더욱 간절할 것입니다. 또 만나러 가는 동안의 고통은 가지 못하는 이의 그리움보다 차라리 달지 않을까? 다시 찾은 산. 그 그리움의 골짜기에서 다시는 내 마음에서 산을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을 합니다.

마지막 정상이 저만치에 나타납니다. 한발 한발이 난행 그 자체의 비탈길입니다. 마음은 벌써 정상을 올랐는데 몸은 항상 마음보다 뒤쳐져서 갑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는지 몇 주를 산행에 빠지고 몸 가꾸기를 게을리 한 세월의 간격이 너무 넓게 여겨집니다. 천근만근으로 여겨지는 걸음걸이의 육중한 하중만큼 분별없이 살아온 지난날의 삶의 무게를 느낍니다. 근면하지 못한 인간에게 내려지는 산의 징벌로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정상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립니다. 정상은 바로 눈앞 저만치에 있는데 이내 닿기가 힘든 것은 자꾸만 멀어지는 산 탓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살아온 인간이 가진 불신의 눈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이 힘든 고비를 넘게 해주는 이는 바로 먼저 산정에 오른 함께 한 동행의 힘내라는 격려입니다. 정상에 서서 서로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눕니다. 세상을 향해 큰 기지개도 펴봅니다. 그 오랜 시간의 여정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이 숭고하도록 장엄한 자연과 동화되어 그 성스러운 인디언의 길을 따라 함께 걸었음을 무한한 자부심으로 여기니 저리도 어지러이 휘어진 길처럼 그간의 험난한 여정이 차라리 기쁨으로 승화되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옵니다.

이율배반적인 슬픔 같은 기쁨입니다. 정상에 서서 이 성스러운 길에서 얻은 교훈으로 내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할 것인가 하는 숙제로 남아 무거운 마음에 한참을 아무런 말도 없이 장승처럼 버티어 서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는 그랜드 캐년의 슬픈 낙조가 자줏빛으로 하늘 한 모퉁이에서 하늘 전체로 물들어 갑니다. 다음은 어디로 가야하나? 어떤 산의 정상에 설 것인가? 하릴없이 서녘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석양은 보랏빛으로 다시 비끼며 그 장엄한 그랜드 캐년을 비추고 또 다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위해 영면을 취하려 합니다. mijutrek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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